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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3년 10월 ~ 11월에 부부가 같이 다녀온 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길)의 기록입니다.
그 당시 틈틈이 적어두었던 기록과 기억을 토대로 순례여행 중에 있었던 일들과 당시 저희들의 느낌을 솔직하게 담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또한 순례길을 준비하는 예비 순례자분들에게 최대한 도움이 되고자 필요한 정보들을 정리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저희들의 인생에서 값지고 소중한 시간들이었던 이번 순례여행의 기록들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글이 제법 길기 때문에 후기글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읽으시길 권합니다.
도움이 될 만한 정보성 내용들은 볼드체(굵은 글씨)와 명조체의 푸른색 글씨로 표기해 놓았습니다.
정보가 필요하시다면 볼드체와 명조체의 푸른색 글씨 부분들 위주로 참고하세요.
그럼, 오늘도 부엔 까미노!
2023년 10월 28일(토)
오늘의 목적지인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Hornillos del Camino)라는 마을 이름의 어원은 '화덕'이라는 뜻의 단어 '오르노(Horno)'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전해진다고 합니다. 약 9세기에는 이 마을 이름이 '포르니에요스(Forniellos)'라고 불렸는데, 이것은 도자기 공장에 있는 작은 화덕을 의미한다고 하네요. 그럼 오늘날의 이 마을의 이름은 '순례길의 화덕'이라는 의미인 걸까요? 그러고 보니 부르고스에서 들렀던 베이커리의 이름이 'El Horno(그 화덕)' 였습니다. 이 지역이 화덕으로 유명한 곳인가 봅니다. 오늘 그 화덕의 마을로 갑니다.
이동구간: 부르고스(Burgos) -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Hornillos del Camino)
이동거리: 약 20.6km
출발시간: 08시 00분
도착시간: 14시 30분
도착숙소: Casa rural la casa del abuelo (사립 호스텔)
비바람이 많이 부는 아침입니다. 스페인 북부는 이미 본격적인 우기에 접어든 것 같습니다. 부지런한 '안티모'와 '미카엘라'양이 가장 먼저 출발했고 그 뒤를 따라 '도나'양과 '따수미'양도 먼저 출발했습니다. 저희는 일찍 나서지 않고 천천히 준비를 하고 8시 마지막 퇴실 시간에 맞추어 출발하였습니다. 도시를 빠져나오는 길 왼편으로 부르고스 대학교(Universidad de Burgos)가 보입니다. 오래전부터 저는 외국의 대학교에서 공부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앞으로 그런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있으면 좋겠습니다. 부르고스 대학교를 지나자 오른편 길가에 부르고스 첫째 날 사 먹었던 베이커리 El Horno 간판이 보입니다. 이 베이커리는 아마도 프랜차이즈 체인점인것 같습니다. 반가운 마음으로 들어가 빵과 커피를 사 마십니다. 빨간 머리의 종업원 아가씨가 밝게 웃으며 서빙해 줍니다. 사실은 둘 다 화장실을 가고 싶어서 들어갔습니다. 맛있게 아침을 먹고 몸을 추스른 후 다시 출발합니다. 부르고스를 빠져나오는데 거의 1시간 가까이 걸렸습니다. 부르고스가 큰 도시임을 다시 한번 느끼며 본격적인 순례길로 들어섭니다.
어제 아내의 컨디션이 안 좋았던 것에 비해서 오늘 아침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보여 다행입니다. 팜플로나 이후 항상 패밀리들과 함께 걷다가 오랜만에 단 둘이서 걸어갑니다. 그동안 아내와 많이 하지 못했던 대화를 하며 차분히 걸어갑니다. 이번 저희들의 순례길은 홀로 걷는 ‘나’의 순례길이 아니라 함께 걷는 ‘우리’의 순례길인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로그로뇨로 가는 길 위에서 만났던 '사이먼' 아저씨의 “Listen to your body”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아내는 저와 한 몸인 것임을 잠시 잊고 걸어왔던 건 아닌가 자문해 봅니다. 아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단 저에게만 귀 기울였던 것은 아닌가 돌아봅니다.
비는 그쳤으나 바람은 여전히 매섭습니다. 아내는 속옷과 긴팔 티셔츠, 경량패딩에 바람막이, 그리고 넥 워머(neck warmer)에 장갑까지 꼈으나 추워합니다. 오늘의 목적지까지는 약 20km 정도로 비교적 가까운 거리이나 쉽지는 않습니다. 순례길에 쉬운 길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갈수 없을 만큼 어려운 길도 없습니다. 따르다호스(Tardajos)라는 마을에 도착합니다. 레안드로 마요랄(Plaza Leandro Mayoral) 광장에 어린이들을 위한 미끄럼틀과 그네가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배낭을 내리고 그네에 걸터앉습니다. 그네를 타며 아픈 다리를 잠깐 쉬어갑니다.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가 추위를 잊고 깔깔 웃습니다. 단단히 옷가지를 동여맨 순례자들이 힐끗 쳐다보다 매서운 바람에 다시 고개를 숙이고 골목으로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저희도 다시 몸을 추스르고 출발합니다.
오늘 숙소는 추운 날씨와 지친 몸으로 인해 공립 알베르게가 아닌 사립 호스텔 2인실로 숙소를 변경하기로 하였습니다. 미리 오르니요스의 공립 알베르게로 예약을 하는 수고를 해 준 '미카엘라'양에게 양해를 구했습니다. 따르다호스 마을을 지나면 바로 나타나는 라베 데 라스 깔사다스(Rabé de las Calzadas) 마을을 빠르게 지나갑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메세타 평원'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라베 데 라스 깔사다스 마을을 빠져나오는 길목에는 모나스떼리오 성모 성당(Ermita de la Virgen de Monasterio)이 있었는데 저희는 그냥 지나쳐 왔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패밀리들에게 들어보니 이곳에 가면 수녀님께서 순례자들을 위해 기도를 해주시고 목걸이를 걸어주신다고 합니다. 나중에 만난 ‘안티모’가 저에게 이 목걸이 하나를 건내주었습니다.
*모나스떼리오 성모 성당 위치: https://maps.app.goo.gl/1seMF5A7K5DzR1dM9
이제 약 1시간 정도만 더 걸어가면 오늘의 목적지 오르니요스가 나옵니다. 힘을 내어 걸어가는데 저 멀리 낯익은 뒷모습들이 보입니다. 저희보다 앞서 출발했던 '도나'양과 '따수미'양입니다. 순례길이 너무 아름다워 충분히 보고 느끼고 즐기며 천천히 걸어왔다고 합니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순례자들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한민국 산티아고 순례자 협회의 '메세타 평원'에 대한 설명이 바로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인 듯합니다.
부르고스를 출발하는 순례자는 메세타에 관한 악명 높은 소문을 듣게 됩니다. 부르고스와 빨렌시아, 레온의 끝나지 않게 이어지는 메세타는 여름에는 순례자에게 사막과 같은 열기와 건조함을, 겨울에는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시베리아 동토의 차가움을 선사합니다. 많은 순례자들은 이러한 메세타를 건너뛰기 위해서 부르고스에서 레온까지 기차나 버스를 타고 이동합니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메세타는 순례자에게 진정한 순례의 기쁨을 느끼게 해줄 것입니다. 메세타를 온전히 도보로 이동한 순례자는 어김없이 이 루트가 주는 고독과 침묵, 평화와 기쁨에 대해서 말합니다. 이렇듯 메세타는 순례자의 육체적 에너지와 정신적 의지를 끊임없이 시험합니다. 이러한 유혹을 뿌리치고 몸과 마음을 집중하여 순례길과 하나가 되는 순간 주위의 풍경이 새롭게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진정한 순례자로 거듭나길 원한다면 메세타를 도보로 이동하는 것을 권유합니다.
(출처: 대한민국 산티아고 순례자 협회 홈페이지)
드디어 오르니요스에 도착하였습니다. 비는 진작에 그쳤지만 바람이 강해서 비옷을 바람막이 삼아 계속 입고 왔습니다. 축축했던 비옷은 바람에 완전히 말랐습니다. 컴컴하게 하늘을 덮고 있던 구름도 걷히고 스페인 가을 하늘 특유의 파란색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숙소는 식당과 호스텔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곳으로 보였으나 저희가 도착했을 때 식당 영업은 하지 않았습니다. 체크인을 하고 2인실 방을 배정받아 들어갔습니다.
짐을 풀기전에 먼저 배낭 이동 서비스로 보낸 가방을 찾기 위해 그리고 패밀리들 얼굴도 볼 겸 걸어서 2분 거리에 있는 공립 알베르게로 갔습니다. 가는 골목길 벽에 누군가 이쁜 꽃 화분을 많이 달아놓았습니다. 추운 날씨로 인해 휑 할수 있는 거리였지만, 꽃 화분들로 인해 거리는 생기가 도는 것 같습니다.
공립 알베르게는 산 로만 성당(Iglesia de San Román) 바로 옆에 있습니다. 그 다음날 들은 패밀리들의 후기에 의하면 너무 추워서 힘들었고 그 외 알베르게 환경도 좋지가 않아서 힘들었다고 합니다. 오늘 저녁식사는 공립에 묵는 패밀리들끼리 따로 먹고, 저와 와이프는 숙소에서 저희들끼리 따로 먹기로 했습니다.
*공립 알베르게 위치: https://maps.app.goo.gl/enECQdf8sjshvjbe8
저희는 씻기전에 식사부터 먼저 하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구간은 비교적 짧은 거리이기에 중간에 식사를 하지 않고 바로 와서 배가 많이 고팠습니다. 1층 주방에 내려가 부그로스에서 사놓았던 컵라면과 모르찌야로 식사를 했습니다. Dia 슈퍼마켓에서 사온 착즙 오렌지주스도 역시나 맛있습니다. 배부르게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모르찌야가 생각보다 맛있습니다. 특히 추운 날씨에 먹는 한국 라면의 매력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올라온 저희는 잠깐 침대에 누웠다가 저희도 모르는 사이 잠들고 말았습니다. 아마도 많이 피곤한 상태에서 배가 부르니 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졸음이 쏟아졌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오후 4시 정도부터 저녁 8시까지 낮잠을 잔 것 같습니다.
일어나 따뜻한 온수로 샤워를 하고, 입었던 옷가지들도 손빨래를 해서 방안에 있는 라디에이터 근처에 널어두고 밖으러 바람을 쐬러 나갔습니다. 이미 해가 져서 캄캄하고, 1층 거실에는 다른 순례자분들 몇몇 이서 벽난로 앞 소파에 앉아 대화를 하거나 책을 읽고 있습니다. 아늑한 분위기의 호스텔인 것 같습니다. 방도 깨끗했구요.
*Casa rural la casa del abuelo 호스텔: 1층에는 조리도구가 갖추어진 작은 주방이 있어서 조리가 가능했고, 벽난로가 있는 거실과 식당으로 이어지는 정원이 있었습니다. 저희는 2층에 있는 2인실에 묵었는데, 저희 옆방은 3인실(싱글 베드가 3개)이었습니다. 도미토리 룸이 있는지는 확인을 못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온수가 너무 잘 나왔고, 방과 샤워실에 있는 라디에이터는 투숙객이 직접 작동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좋았습니다. 침구도 깨끗하고 방의 청소 상태가 깔끔하고 좋았습니다.
(호스텔 위치: https://maps.app.goo.gl/jFDpuzyK6sgkdTsk7)
잠깐 바람을 쐬고 다시 방으로 들어와 내일을 준비합니다. 내일은 까스트로헤리스(Castrojeriz)까지 갑니다. 내일도 오늘과 비슷한 거리로 비교적 짧은 거리를 걸어갈 예정이라 마음의 부담이 적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일이 그렇게 힘들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지만, 이게 순례길이지요. 내일 일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럼, 다음편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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