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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3년 10월 ~ 11월에 부부가 같이 다녀온 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길)의 기록입니다.
그 당시 틈틈이 적어두었던 기록과 기억을 토대로 순례여행 중에 있었던 일들과 당시 저희들의 느낌을 솔직하게 담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또한 순례길을 준비하는 예비 순례자분들에게 최대한 도움이 되고자 필요한 정보들을 정리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저희들의 인생에서 값지고 소중한 시간들이었던 이번 순례여행의 기록들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글이 제법 길기 때문에 후기글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읽으시길 권합니다.
도움이 될 만한 정보성 내용들은 볼드체(굵은 글씨)와 명조체의 푸른색 글씨로 표기해 놓았습니다.
정보가 필요하시다면 볼드체와 명조체의 푸른색 글씨 부분들 위주로 참고하세요.
그럼, 오늘도 부엔 까미노!
2023년 10월 27일(금)
오늘은 부르고스에서의 둘째 날입니다. 저희들은 순례길을 걸으며 만나는 대도시들에서는 연박을 하며 휴식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부르고스에서의 2일 차는 더 피곤한 느낌입니다. 아마도 그동안 누적된 피로와 데카트론, 대성당 등 많이 돌아다녀서인 것 같습니다.
순례길에서 알베르게나 호스텔이 아니라,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일어나 맞이하는 아침과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먹는 조식은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아침에는 아내가 우리를 위해 맛있는 조식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침 메뉴는 담백한 볶음밥과 쏘야(소세지 야채 볶음), 에그 스크램블 그리고 따끈한 계란국입니다. 어제 Dia 슈퍼에서 사 온 착즙 오렌지주스는 아침에 마시기에 정말 좋습니다. 반찬으로 아내가 미리 사놓은 당근 피클이 아침식사와 굉장히 잘 어울렸습니다. 아니 아내는 언제 이 많은 것을 준비했을까요? 아침 9시 미사를 드리러 가는 '안티모'동생과 '미카엘라'양을 위해 특별히 아침 일찍부터 식사를 준비해 준 아내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맛있는 아침식사를 끝내고 '안티모'와 '미카엘라'는 미사를 드리러 나가고, 저와 '따수미'양은 뒷정리와 설거지를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부르고스에서의 오전 여유시간을 가집니다.
*착즙 오렌지 주스: 저희는 순례길을 걸으며 들리는 마을마다 슈퍼마켓을 들러서 이 주스가 있으면 사 마셨습니다. 옆에 진열된 빈병을 가져다 직접 짜서 담은 다음에 계산대로 가서 계산을 하면 됩니다. 사진을 보니 250ml에 2.49유로, 1000ml에 5.99유로였네요. 이 기계가 없는 슈퍼도 있고, 기계는 있으나 오렌지가 없어서 안 되는 경우도 있고 그랬습니다.
오전 11시가 가까워올 무렵 미사를 보러갔던 패밀리들이 돌아오고, 마침 체크아웃을 알리는 듯 방을 청소하는 직원분이 올라오십니다. 짐을 챙겨 숙소를 나와 도보로 약 10분 거리에 있는 부르고스의 공립 알베르게로 향합니다. 정문에는 오후 2시에 오픈한다는 문구가 적혀있습니다. 아침식사를 든든히 먹어서 배가 많이 고프지는 않았습니다. 근처 타파스 바에 들러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와서 알베르게 반대편에 있는 La Babia 카페의 길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오후 2시 알베르게 오픈을 기다립니다. 하늘을 가득 덮고 있던 컴컴한 구름이 걷히고 밝은 태양빛이 비추어 내리기 시작합니다. 토실토실해 보이는 참새들이 지저귀며 주변을 날아다닙니다. 먹고 있던 빵 부스러기를 주변에 조금 뿌리자 이내 몰려들어와 조심스레 빵조각을 입에 물고 날아갑니다.
*La Babia 카페: 공립 알베르게 정문의 반대편에 위치한 이 카페는 부르고스의 공립 알베르게로 배달되는 배낭 이동서비스(일명 '동키')의 배낭이 도착하고 출발하는 중요한 장소입니다. 부르고스 공립 알베르게로 배낭을 보내셨다면 이 곳에서 픽업을 하셔야 하며, 부르고스에서 배낭을 부치신다면 이곳에다 배낭을 맡겨야 합니다.
또한 위치가 좋고 아침 6시 30분이면 오픈을 하기에 간단히 아침식사나 커피 한잔을 하고 출발하기에 좋습니다.
(카페 위치: https://maps.app.goo.gl/TneiJsz1pzRkXcqp8)
오후 2시가 가까워오자 어디선가 하나 둘씩 배낭을 멘 순례자들이 모여들고 알베르게 앞에는 입장을 대기하는 줄이 생깁니다. 저희도 배낭을 둘러매고 줄지어 섰습니다. 10명의 사람이 줄을 섰는데 1명을 제외한 9명은 한국사람입니다. 하하. 정말 대한민국의 산티아고 순례길 열풍인 것 같습니다.
*부르고스 공립알베르게(Albergue Municipal de Peregrinos de Burgos): 전체 도미토리를 다 돌아보진 못했으나 굉장히 큰 규모의 알베르게로 보였습니다. 남녀 구분이 없는 도미토리에 벙커베드(2층 침대)가 줄지어 있고 도미토리 내부에 남녀 구분이 없는 샤워실과 화장실이 안쪽 벽면을 따라 길게 일렬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1층에 공용 주방이 있고 공간이 넓어서 많은 사람이 동시에 사용이 가능했습니다만, 음식을 요리해서 먹을 수는 없는 구조였고 대신 전자레인지에 음식을 데워먹는 정도와 설거지용 싱크대 정도가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8시 전에는 무조건 퇴실을 해야하며, 8시에도 퇴실하지 않고 늦장을 부리는 순례자들은 눈칫밥을 좀 먹어야 했습니다.
(알베르게 위치: https://maps.app.goo.gl/Eo7ZCkGcGRndLYpv8)
베드에 짐을 풀고 데카트론으로 가기위해 밖으로 나갔습니다. 부르고스의 데카트론은 공립알베르게에서 약 3km 떨어져 도보로는 약 45분 정도 소요되는 제법 먼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큰 어려움 없이 갈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르는 것이 없는 우리의 '도나'양이 데카트론까지 갈 수 있는 무료 셔틀버스가 있다고 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도나'양을 만나지 못했다면 저희들의 순례길은 훨씬 더 힘든 여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역시 아는 것이 힘인 것 같습니다. '도나'양과 함께 셔틀버스가 서고 출발하는 곳으로 알려진 부르고스의 극장(Teatro Principal) 앞으로 가서 버스를 기다립니다. 이번에는 기필코 마음에 드는 트래킹화를 사기를 바라는 '따수미'양과 추워지는 날씨에 두꺼운 옷이 필요한 '미카엘라'양도 같이 가기로 합니다. Teatro Principal 극장은 스페인의 유명한 장군 엘시드(El Cid)의 동상 앞에 있습니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극장 입구 처마 밑으로 비를 피하러 들어가 버스를 기다리며 엘시드 장군의 동상을 바라봅니다. 곧 하얀색 대형 버스가 한 대 도착하고 사람들이 우루루 탑승을 합니다. 데카트론으로 가는 버스였습니다. 버스 외부에 El Corte Ingles라는 로고가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셔틀버스는 데카트론 바로 옆에 위치한 El Corte Ingles라는 대형 백화점에서 운영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오후 3시 10분 버스를 타고 출발을 했고 복귀 버스는 오후 4시 30분 출발한다고 합니다. 데카트론에서 각자 필요한 물품을 구매한 후 복귀 버스 출발시간 전까지 시간이 남아서 저희는 데카트론 옆에 있는 El Corte Ingles 백화점 구경을 갔습니다. 순례길 중이다보니 살 수 있는 것은 없었으나 1층 식품관에 다양한 식품들이 있어서 요거트, 과일, 과자 등의 간식거리를 조금 구매했습니다. 이제 부르고스 시내로 복귀하는 버스를 타러 갑니다. 데카트론에서는 점점 추워지는 순례길의 날씨와 강한 바람으로 장갑 한켤레와 아내의 머리카락을 고정할 머리띠(헤어밴드)를 구매했습니다.
부르고스 대성당 근처의 츄로스추로스 카페에서 '미카엘라'와 '안티모' 동생을 만나 같이 추로스를 먹고는 그 유명한 부르고스 대성당으로 갔습니다. '안티모'는 저희가 데카트론을 간 사이 먼저 다녀와서 저희와 '미카엘라'양 3명이 같이 갔습니다. 외관부터 멋들어진 부르고스 대성당은 가히 스페인의 3대 성당이라고 할만했습니다. 크고 웅장한 건축물과 화려한 조각들, 스테인드 글라스 그리고 여러가지 조형물 등 건축에 대한 지식과 스페인 가톨릭의 역사에 무지한 저였지만 대단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성당 내부의 인테리어와 성화, 성물 및 도네이션을 유도하는 체험 등 지극히 상업화된 스페인 가톨릭의 모습에 씁쓸함도 있었습니다. 다만 이를 단순히 종교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스페인의 역사적 문화적 유산으로 바라본다면 이렇게 관리하는 것이 어쩌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멋진 건축물은 종교적 건물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 더 넓게는 스페인이라는 나라에서 지키고 보존해야 할 역사적 유산이니까요. 모쪼록 전 세계에 있는 이러한 인류의 위대한 유산들이 잘 보존되고 관리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성당 내부를 둘러봅니다.
*부르고스 대성당(Catedral de Burgos): 부르고스 대성당은 원래 산타 마리아 대성당(Portada de Santa Maria)의 다른 이름이라고 합니다. 13세기에 착공해 15세기와 16세기에 완성된 이 성당은 뛰어난 건축 구조, 성화, 성가대석, 제단 장식 벽, 묘지, 스테인드글라 등 예술작품과 독특한 소장품을 지녀 고딕 예술의 모든 역사가 집약된 건축물로 평가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네스코에도 등재되어 있다고 하네요.
특히 부르고스 대성당은 플랑부아양(타오르는 불꽃 모양의 복잡한 장식을 갖춘 고딕 양식) 건축 양식으로 명성이 높을 뿐 아니라 카스티야 왕국의 스페인 왕실 사람의 유해를 보관하고 있어 더 유명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성당은 무엇보다도 부르고스가 배출한 가장 뛰어난 인물이며 엘 시드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11세기의 군인이자 군사 지도자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와 그의 아내 도냐 히메나가 잠든 곳으로 가장 유명하다. 이 부부의 유해는 1919년 성당 중앙에 안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엘 시드는 스페인의 국토 수복 운동인 '레콩키스타'의 영웅이었고, 1094년 발렌시아를 정복해 이 도시를 스페인 아래로 되돌렸으며, 죽을 때까지 발렌시아와 그 주변 지방을 다스렸다고 합니다.
(유네스코 홈페이지와 네이버 지식백과의 설명을 참고하였습니다.)
성당 내부에 VR 헤드셋을 끼고 성당 건물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기회가 되면 한번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약 10여 분간 진행이 되었고 적당한 재미와 성당 건물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서 이해하는데 조금 도움이 되었습니다. 대성당 입장을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단, 줄을 좀 서야 했습니다.
규모가 크고 볼게 많아서 성당 내부와 기념품 샵을 다 보고 나오니 2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데카트론에서부터 부르고스 대성당까지 한참을 서서 구경하며 걸어다녔더니 급속도로 몸이 피로해지고 발바닥과 다리가 아파왔습니다. 아내에게는 감기몸살기운이 엄습해 왔고 그로 인해 무릎통증은 더 심해지는 듯합니다. 하늘은 맑고 아름다웠으나 마음은 무겁습니다.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나가기에는 너무나 피곤하여 저희는 슈퍼마켓에서 간단히 먹을 음식을 사서 알베르게 공용 주방에서 먹고 쉬기로 했습니다. '안티모' 동생도 같이 하기로 합니다.
슈퍼마켓에 가보니 스페인식 순대로 유명한 모르찌야(Morcilla)를 팔고 있습니다. 모르찌야 2줄과 콜라 한 병을 샀습니다. '안티모'는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파스타를 샀습니다. 저희는 앞으로 점점 더 추워질 날씨에 대비해 아내의 후리스(Fleece)를 사러 부르고스 시내 주변을 조금 더 둘러보고 숙소로 복귀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아내의 컨디션이 더욱 안 좋아져서 결국 숙소에 돌아와 아내는 베드로 들어가 약을 한 첩 먹고 자리에 눕습니다. '안티모'는 저희를 기다리다 결국 혼자서 파스타로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저와 아내는 한 참 뒤에 주방으로 내려가 가지고 온 순대 '모르찌야'를 먹었습니다.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먹으니 기대했던 것보다 상당히 맛있었습니다. '안티모'가 파스타도 하나 더 갖다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녁식사를 다 해갈 때쯤 '미카엘라'양이 근처 카페에서 따뜻한 국화차를 사왔습니다. 아내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고 추운 날씨에 밖에 나가서 아내를 위해 사 온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천사 같은 이들을 패밀리로 만났음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모르찌야(Morcilla) : 스페인식 순대 또는 블러드 소시지(Blood sausage)로 알려진 모르찌야의 존재에 대해서 저희가 알게 된 것은 사실 순례길을 시작하고 나서였습니다. 론세스바예스에서 저녁식사를 하던 날 저희랑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스페인 출신의 청년이 부르고스에 가면 반드시 '모르찌야'를 먹어봐야 한다고 강조해서 말해주었기 때문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르고스에 가면 이 것을 꼭 먹어보리라 막연한 생각만 하고 지금까지 왔었죠.
몇 가지의 브랜드를 먹어본 결과, 우리 입맛에 맞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었습니다. 부르고스의 슈퍼에서 사 먹었던 이 Tere라는 브랜드와 Gonzalez라는 브랜드의 제품이 맛이 괜찮았습니다. 슈퍼 주인장 아저씨가 전자레인지에 따끈하게 데워서 먹으면 된다고 해서 먹어봤더니 맛있었습니다. 아내도 저도 맛있게 먹었어요. 저희는 마침 에어비앤비에서의 요리를 위해 사놓았던 바베큐맛 소스가 있어서 거기에 찍어 먹으니 더 맛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국라면이랑 같이 먹어도 맛이 좋았습니다.
그나저나 아내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걱정입니다. 그동안 저도 아내도 체력적으로 많이 피곤해졌었나 봅니다. 부르고스 대성당 관람 후 숙소로 돌아오기 전 아내와 약간의 다툼이 있었습니다. 순례길을 시작하면서 저는 순례길에서 마주하게 되는 모든 것에 감사하고, 불평과 불만은 절대 가지지 말자고 다짐했었습니다만, 그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만 아내에게 짜증을 내고 말았네요. 그로 인해서인지 아내 컨디션이 더 안 좋아진 것 같습니다. 내일부터는 다시 길을 걸어야 하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원래 계획은 약 31km를 걸어서 온타나스(Hontanas)까지 가고 싶었지만 저도 아내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 자신이 없습니다. 20km 거리에 있는 오르니요스(Hornillos de Camino)까지만 가야겠습니다. 어디까지를 가든 저와 아내가 이 길을 기쁜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같이 걸어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연박을 하며 휴식을 하루 더 하였지만 어째서인지 더 피곤한 부르고스에서의 2일 차가 지나갑니다. 약 2주간 피로가 누적되기도 했거니와 데카트론과 부르고스 대성당을 돌아다니며 많이 걸어 다녔던 것 같습니다. 내일 좋은 컨디션으로 일어나길 희망하며 잠자리에 듭니다.
다음편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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