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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 여행/산티아고 순례길 후기

[산티아고 순례길 후기14] 아헤스(Agés) 가는 길에 가을을 만났습니다. 인생길의 동행을 만났습니다

by 완자야 2024.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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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은 2023년 10월 ~ 11월에 부부가 같이 다녀온 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길)의 기록입니다.

그 당시 틈틈이 적어두었던 기록과 기억을 토대로 순례여행 중에 있었던 일들과 당시 저희들의 느낌을 솔직하게 담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또한 순례길을 준비하는 예비 순례자분들에게 최대한 도움이 되고자 필요한 정보들을 정리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저희들의 인생에서 값지고 소중한 시간들이었던 이번 순례여행의 기록들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글이 제법 길기 때문에 후기글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읽으시길 권합니다.

도움이 될 만한 정보성 내용들은 볼드체(굵은 글씨) 명조체의 푸른색 글씨로 표기해 놓았습니다. 
정보가 필요하시다면 볼드체와 명조체의 푸른색 글씨 부분들 위주로 참고하세요.

그럼, 오늘도 부엔 까미노!

 

 
 

산티아고 순례길 후기, 아헤스

 
  
 
2023년 10월 25일(수)
부르고스 지방의 작은 마을인 아헤스(Agés)는 지금은 2020년 기준 총 58 가구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지만, 역사적으로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중세 나바라의 왕 가르시아 엘 데 나헤라의 군대와 그의 형제 페르난도 데 까스띠야의 군대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었으며, 이 전투로 가르시아 왕이 사망하고 나바라의 군대는 패배하게 되어 결국 이베리아 반도에서 나바라 왕국의 왕위 다툼이 끝나버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아헤스로 가는 길에 저희는 어느새 다가와 있는 가을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인생길의 동행(同行)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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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구간: 벨로라도(Belorad) - 아헤스(Agés)

이동거리: 약 27.6km

출발시간: 06시 30분

도착시간: 14시 30분

도착숙소: Albergue Fagus (사립 알베르게)

 
 
 
깨끗하고 포근했던 알베르게 Hostel B의 1층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숙소 앞 길목에서 패밀리들을 기다립니다.  저희 숙소에서 3분 거리에 있는 공립 알베르게에서 오늘 아침 6시 30분에 출발할 거라던 패밀리들은 6시 37분까지 기다려도 소식이 없습니다.  먼저 천천히 걸어가기로 합니다.  1분 뒤 출발한다는 메시지가 옵니다.  10여분을 천천히 걸어가다 보니 뒤에서 패밀리들이 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런데 뒤돌아 보니 '안티모' 동생과 골드 막내 '미카엘라'양 2명뿐입니다.  우리의 '따수미'양은 본인 패이스를 따라 천천히 걸어갈 테니 걱정하지 말고 앞서가라고 했다고 합니다.  첫째 날 피레네 산맥을 넘으며 고생을 많이 한 '따수미'양은 첫날부터 발에 물집이 크게 잡혀 오는 내내 고생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파하는 '따수미'양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순례길은 남이 대신 걸어줄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스스로 걸어내야 하는 길이었고, '따수미'양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불평하지 않고 씩씩하게 걸어오고 있는 '따수미'양에게 마음의 응원을 보내며 출발합니다.
 
캄캄한 하늘 위에서 새벽별이 반짝입니다.  순례길 위에서는 저희들의 헤드랜턴과 손전등이 반짝입니다.  각자의 손과 머리에서 비추는 불빛을 의지하며 걸어갑니다.  때로는 나란히 함께, 때로는 두 명씩, 때로는 세 명씩,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갑니다.  차가운 새벽공기와 제법 거세게 불어대는 바람이 저희들의 대화를 중단시킵니다.  눈앞에 넓게 펼쳐진 황금빛 가을 논밭 위로 구름이 자욱합니다.  스페인에 우기()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스페인의 우기: 스페인의 국가 면적은 대한민국 총 면적의 5배가 넘는다고 하니 생각보다 굉장히 넓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스페인의 기후는 지역별로 달리 봐야하지만, 저희가 걷는 프랑스길은 일반적으로 11월에서 그 다음해 3월 까지가 우기가 있는 지역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희가 걸은 시기에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중간중간에 반짝 날씨가 개는 날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 흐리고 비가 자주 왔었던 것 같네요.  단, 우기라고 해서 항상 비가 많이 오는 것은 아니고 매년 비가 오는 정도의 차이는 있다고 합니다.  스페인의 기후와 날씨에 대해서는 다음에 별도로 한번 포스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없이 한참을 걷다보니 어느새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Villafranca Montes de Oca)라는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거의 12km에 달하는 거리를 금세 걸어온 것입니다.  '따수미'양도 곧 도착했습니다.  쌀쌀한 아침 공기와 바람을 이기며 걸어오다 보니 저희들에게는 몸을 녹일 수 있는 휴식이 필요했습니다.  마을어귀에 있는 식당 앞에 서성이는 순례자들이 보입니다.  저희도 들어가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합니다.  각자 먹고 싶은 빵이나 샌드위치를 시킵니다.  '안티모' 동생과 저는 따뜻한 커피에 하몽(jamón)에 계란 후라이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시켰습니다.  차가웠던 몸이 조금씩 따뜻하게 녹는 듯합니다. 

 
 *식당 이름은 El Pájaro이고, 위치는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 마을 초입에 있습니다.
(식당 위치: https://maps.app.goo.gl/xtpufSmTdZ2p4Dmb8)


 
 
충분한 휴식을 가진 저희는 다시 힘을 내 출발했습니다.  저의 아팠던 무릎은 점점 더 괜찮아졌고 발바닥이 아픈 것은 매일매일 걸으니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괜찮습니다.  그렇지만 아내는 여전히 무릎 통증이 낫지를 않았고, 발에 한번 잡힌 물집은 매일 걸을 때마다 새로운 물집으로 바뀌며 아내를 괴롭혔습니다.  아내가 챙겨 왔던 소염진통제와 근육이완제는 제가 무릎이 아플 때 거의 다 먹어버려서, 아내가 먹을 약은 이제 별로 없습니다.
 
옆에서 같이 걸어가던 잘생긴 '안티모' 동생이 본인이 챙겨왔던 소염진통제와 근육이완제 절반을 저희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순례길에서 까미노 엔젤을 만나는 것도 축복인데, 엔젤들과 함께 패밀리가 되어 걸어가다니요, 생각할수록 감격적입니다.  원래부터 '천사'였던 사람을 패밀리로 만나게 된 것인지, 아니면 이 길을 걸으며 패밀리들이 다 '닝겐'에서 '천사'로 변모한 것인지ㅎㅎ.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그 약 덕분에 이후에도 아내도 저도 더 잘 걸어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람은 차고 거세지만, 그래도 함께 걸으니 덜 힘든 것 같습니다.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 마을을 벗어나자 산길이 시작됩니다.  산에는 이미 가을이 와 있었습니다.  저희가 걸어가는 길에는 단풍 낙엽이 소복히 쌓여 레드카펫처럼 저희들의 걸음을 인도하는 듯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이 길을 지나가는 순례자분도 계셨습니다.  자전거 바퀴 좌우에 배낭을 달아서 타고 가는 뒷모습이 멋있습니다.  나도 언젠가 기회가 되면 자전거를 타고 이 길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 가을 단풍의 브라운 카펫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키가 크고 울창한 소나무 숲이 나오고, 곧 순례자를 위한 재미있고 유쾌한 휴식공간이 나옵니다.  이곳을 지나는 순례자들을 위해 누군가 통나무를 잘라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와 여러 가지 조형물을 만들어 놓아두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기부제로 운영하고 있는 순례자를 위한 '오아시스'가 있습니다.  간단한 커피와 음료, 빵을 판매하고 있어서 오르막길을 오르느라 지친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휴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엊그제 사놓은 로투스 비스코프 샌드를 꺼내서 패밀리들과 나눠 먹었습니다.  입 안에서 녹아 없어집니다.  이제 다시 출발할 준비를 합니다.

 
*순례자를 위한 휴식공간 및 오아시스: 구글맵의 리뷰를 보니 오아시스 카페를 운영하는 분은 남자분과 여자분이 같이 운영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저희가 갔던 날에는 여자분 혼자서 계셨습니다.  추운 날씨에 순례자들을 위해서 나와계신다는 게 고마웠습니다.  잘생기고 에너지 넘치는 강아지 2마리가 저희를 반겨주었습니다.
(Oasis del peregrino 위치: https://maps.app.goo.gl/dVte6gWSMN6kgKPS7)


 
 
 
날이 차고, 바람이 많이 불어서 쉽지만은 않은 순례길입니다.  그다음 마을인 산 후안 데 오르떼가(San Juan de Ortega)는 빠르게 지나쳐 최종 목적지인 아헤스로 걸어갑니다.  오르떼가를 지날 때 키가 크고 미소가 아름다운 노신사 한 분을 만났습니다.  독일에서 부부와 함께 오신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쓰고 계신 모자에는 본인이 여행했던 곳들을 기념하는 브로치를 모두 다 달고 계셨습니다.  사진 촬영 허락을 구했더니 흔쾌한 미소로 허락해 주셨습니다.  세상은 넓고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무수히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르떼가 마을을 지났으니 이제 오늘의 목적지 아헤스(Agés)가 정말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소를 키우는 목장과 멋있는 큰 나무가 지키고 있는 평원을 지나서 오늘의 마지막 구간을 걸어갑니다.  복싱으로 단련된 탄탄한 몸을 가진 개구쟁이 '안티모' 동생은 아직 팔팔합니다.  뒤에서 걸어오다가 제가 있는 곳까지 한걸음에 달려옵니다.  그렇게 함께 걸어가며, 함께 걷는 날의 수가 많아져 갈수록 서로를 조금씩 더 알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안티모'는 누구와 대화를 하더라도 여러 가지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잘 이끌어 나갑니다.
마음이 따뜻한 '따수미'양은 묵묵하나 착하고 씩씩하며 믿음직합니다.
'미카엘라'양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이 많고 세심하나 용감합니다.
오늘 함께 걷고 있진 않지만, 천사 같은 '도나'양은 정말 천사같이 포근하고 든든합니다.
그리고 저의 원조 패밀리, 벌써 12년째 제 옆에서 저와 함께 걷고 있는 저의 아내는 사려 깊고 섬세하나 의지와 주관이 있으며 이 세상에서 가장 밝고 환한 미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 같습니다.  처음 론세스바예스와 수비리에서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인 줄 알았던 이들이 지금 저와 아내 옆에서 저희와 함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서로 격려하고 응원해 가며, 앞서가던 이들은 뒤 따라오는 이들을 기다려가며, 같이 걸어가고 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이 동행을 계속 이어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런 생각을 할 즈음에 오늘의 목적지 아헤스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저희들이 묵을 숙소는 아헤스(Agés) 마을 초입에 있는 Albergue FAGUS라는 사립 알베르게입니다.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면서 식사가 가능한지 물어보니 점심식사 주방 마감시간이 오후 3시라고 합니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 30분을 지나고 있습니다.  체크인을 하는 동시에 알베르게의 식당에서 식사부터 먼저 하기로 했습니다.  피자(Pizza)나 감자튀김, 하몽, 초리조 등 단품 메뉴도 있었고 순례자 메뉴도 있었습니다.  저희는 순례자 메뉴를 먹기로 하였습니다.  다른 곳에는 없던 볶음밥이 있네요.  애피타이저 볶음밥을 먹고 메인으로는 폭찹(Pork Chop)을 먹었습니다.  쌀쌀한 날씨에 하루 종일 걸어서 몸은 고단한 하루였지만, 패밀리들과 오붓하게 둘러앉아 늦은 점심을 먹으니 오늘의 모든 피로가 풀리는 듯합니다.

 
*Albergue FAGUS 사립 알베르게: 아헤스 마을 초입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1층에 있는 식당에서는 맛있는 식사가 점심과 저녁에 제공이 되었고요, 순례자들의 주방 사용은 불가능했습니다.  도미토리는 2층에 있는데 저희 5명은 6인실 방을 사용하였습니다.  전반적인 환경은 깔끔하고 깨끗하였으나 공간이 많이 협소했습니다.  베드 4개가 적당해 보이는 크기의 방에 베드 6개가 들어가 있는 느낌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좁은 공간으로 인해 배낭을 풀고 정리하는 게 좀 어려웠습니다.  방마다 1개의 독립된 화장실 겸 샤워실이 있어서 순서대로 화장실과 샤워실을 이용해야 했습니다.  1층에 별도로 남녀 화장실이 하나씩 따로 있었습니다.
 
아헤스(Agés) 마을 이름의 어원에 대해서 찾아보니 아랍어 Ḥaǧǧāǧ(Haggege)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명도 있고, 너도밤나무 숲을 뜻하는 라틴어 Fagus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명도 있었습니다.  알베르게의 이름이 FAGUS 인것을 보면 스페인 현지에서는 아마도 Fagus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명이 더 설득력 있는 것인가 봅니다.
 
(알베르게 위치: https://maps.app.goo.gl/1vBAsVUaxeiFsnWq5)


 
 
 
점심식사를 마치고 도미토리로 올라가 개인정비를 합니다.  일회용 베드 커버와 베개 커버를 씌우고 배낭을 풉니다.  샤워를 하고 간단한 빨래를 하고 앉아서 휴식을 같습니다.  2층 침대의 1층은 대부분 낮아서 바로 앉기가 힘들기 때문에 길게 누워 있어야 합니다.  제 자리는 2층이라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제 자리 앞과 뒤에 창문이 있어서 밖이 내다보입니다.  부지런한 '안티모' 동생이 창문 밖으로 보입니다.  아헤스 마을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나중에 돌아와 산타 에우랄리아 성당(Iglesia de Santa Eulalia) 꼭대기에 독수리 둥지가 있었다며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고는 신나게 설명을 해줍니다.

 
 
 
마을이 작은 마을이기도 했고 추위와 피로에 지쳐있는 상태다 보니 멀리 식당을 찾아 나가기보다는 숙소의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먹기로 하였습니다.  저녁의 순례자 메뉴도 점심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어서 저녁은 여러 가지 다양한 피자와 감자 그리고 정확한 메뉴 이름은 모르겠으나 하몽과 초리조, 치즈가 같이 나온 플래터(Platter) 하나를 시켜서 같이 나누어 먹었습니다.  물론 와인도 빠질 순 없습니다.

 
 
 
오늘 저녁식사에는 '미카엘라'양이 아헤스 마을 도착해서 새로 사귄 캐나다에서 홀로 와서 순례길을 걷고 있는 용맹한 소방관 아가씨 알렉스도 함께 했습니다.  코에 피어싱이 있는 알렉스는 캐나다에서 소방관 현장직으로 일을 하다가 최근에는 사무직으로 옮겨서 근무하던 중 일을 그만두고 순례길을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순례길을 다 걷고 캐나다 복귀를 하고 나면 다시 현장직으로 일을 시작하고 싶다고 하네요.
 
알렉스가 이야기해주는 캐나다에서의 생활은 저에겐 굉장히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정확한 출신 지명이 기억은 나지 않지만 캐나다의 중부와 북부 지방 쪽이었던 것 같습니다.  알렉스는 캐나다에서 무스(Moose, 유럽에서는 엘크(Elk)라고 부르는 엄청난 덩치의 말코손바닥사슴), 곰, 타조, 토끼 그리고 울버린(Wolverine)을 직접 사냥하기도 하고 사냥 후에는 잡아서 먹어보기도 했다고 합니다.  학창 시절에는 학교에서 2주간 혹한의 날씨에 텐트에서 살아남는 훈련인 생존 캠프를 한다고 합니다.  6월에는 해가 거의 지지 않는다고 하며 어느 6월의 밤 11시에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데 정말 대낮같이 밝았습니다.  겨울엔 그 반대로 해가 거의 뜨지 않는다고 합니다.  5월에는 집에서 오로라를 볼 수 있는데, 보통 오로라는 밤에 나타나기 때문에 십 대(Teenager) 때에는 오로라가 나타나면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이어서 아쉬웠다고 합니다.  갈색의 머리칼을 한 캐나다 백인인 그녀의 인중과 턱에는 솜털이라기보다는 수염에 가까운 길이의 털(Hair)이 있었고 입고 있던 후리스(Fleece)를 벗으니 짙은 갈색의 겨드랑이 털도 길게 자라 있었습니다.  정말 세상은 넓고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큰 세계가 있으며, 그 속에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알고 경험한 것들로만 기준을 삼아서 다른 사람들을 쉬이 재단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경계하며 마음을 다잡습니다. 

알렉스는 순례길에서의 아름다움과 추억을 '그림일기'로 남기고 있었습니다.  마음의 감동이 있는 마을에 묵을 때면 가지고 온 색연필을 꺼내어 그림을 그려왔다다며 저희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미카엘라'양 덕분에 정말 특별한 사람을 만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녀의 말과 표정에서 느껴지는 당당함이 멋있어 보였습니다.  그녀와의 만남으로 가 지금까지 배우고 알고 경험한 것들은 이 넓은 세상에 비하면 극히 일부분일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알렉스가 보여준 그녀의 그림일기

 
 
 

 
저녁에 같이 먹었던 피자 중에서 디아블로 피자가 있었는데 주문을 하니 주인장 아저씨께서 매운맛의 정도를 물어보셨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가장 맵게' 해 달라는 의미로 'Muy'를 두 번이나 써서 강조하며 'Muy, muy, Picante'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정말로 매운 피자가 나왔습니다.  스페인에서 먹어본 매운맛 중에서 가장 매웠던 맛이었습니다.  맛있게 먹고 있으니 주인아저씨께서 다가와 음식이 어떠한지 물어보십니다.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맛있다고 인사를 하자 미소로 화답을 해 주십니다.  그리고 주인아저씨께 매운맛의 비결에 대해서 물어보니 “Top Secret”이라고 하시며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손바닥 칼날로 목을 그어 보이는 액션을 하셨습니다.   마치 '더 이상 알려고 하면 죽는다' 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ㅎㅎ.
 
저희는 사실 내일 부르고스에서 에어비앤비 숙소를 잡고 맛있는 요리를 해 먹기로 계획을 세웠었습니다.  그래서 매운맛을 내기 위한 고추 또는 고춧가루가 필요하던 차에 정말로 매운맛의 피자를 먹게 되어서 어떤 향신료를 사야 하는지 정보가 좀 필요했었거든요.  그런데 주인아저씨께서 알려주시지 않아서 조금 서운한 마음으로 계산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 났습니다.  그런데 주인아저씨께서 저에게 슬그머니 다가오시더니 손에 무언가를 하나 쥐어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디아블로 피자 매운맛의 비밀인 고추였습니다.  작지만 보기엔 엄청 매워 보이는 고추를 받아 들고는 감사의 인사를 여러 번 해드리고 식당을 나와 숙소로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몇 분 후 '미카엘라'양이 그 보다 훨씬 더 큰 고추를 더 가지고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주인장 아저씨를 살살 녹이는 애교로 고추를 몇 개 더 얻어온 것입니다.  역시, 괜히 '골드 막내'가 아닙니다.
 
아무튼 슈퍼마켓에서는 보이지 않던 매운 고추를 아헤스의 Fagus 알베르게의 주인장 아저씨께 조금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고추는 내일 저희들의 부르고스 저녁만찬에 큰 기여를 하게 됩니다.
 
 
이제 다들 숙소로 올라와 내일을 준비합니다.  내일은 비가 온다고 합니다.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배낭을 싸놓은 후 침대에 올라가 누웠습니다.  
 
내일은 그 유명한 부르고스로 갑니다.
 
다음편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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