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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 여행/산티아고 순례길 후기

[산티아고 순례길 후기18] 대왕 순대 강제 시식의 추억, 프로미스타

by 완자야 2024.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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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은 2023년 10월 ~ 11월에 부부가 같이 다녀온 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길)의 기록입니다.

그 당시 틈틈이 적어두었던 기록과 기억을 토대로 순례여행 중에 있었던 일들과 당시 저희들의 느낌을 솔직하게 담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또한 순례길을 준비하는 예비 순례자분들에게 최대한 도움이 되고자 필요한 정보들을 정리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저희들의 인생에서 값지고 소중한 시간들이었던 이번 순례여행의 기록들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글이 제법 길기 때문에 후기글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읽으시길 권합니다.

도움이 될 만한 정보성 내용들은 볼드체(굵은 글씨) 명조체의 푸른색 글씨로 표기해 놓았습니다. 
정보가 필요하시다면 볼드체와 명조체의 푸른색 글씨 부분들 위주로 참고하세요.

그럼, 오늘도 부엔 까미노!

 

 

 

산티아고 순례길 후기, 프로미스타

 

 

 

2023년 10월 30일(월)

오늘의 목적지 프로미스타(Frómista)는 부르고스 주(州)의 마지막 마을인 까스트로헤리스에서 시작해서 약 26km를 걸어가야 나오는 곳이고, 행정구역 상으로는 팔렌시아(Palencia) 주(州)에 속하는 곳입니다.  오늘의 여정은 모스뗄라레스 언덕을 넘고, 끝없이 이어지는 밀밭을 지나, 까스띠야 운하(Canal de Castilla)를 따라가는 여정입니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와 아내의 무릎과 물집 통증으로 인해 쉽지 않았던 코스였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우리 '까패(까미노패밀리)'들이 팔뚝만 한 크기의 대왕 순대(스페인식 순대)를 시식 당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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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구간: 까스트로헤리스(Castrojeriz) - 프로미스타(Frómista)

이동거리: 약 25.3km

출발시간: 08시 40분

도착시간: 16시 10분

도착숙소: Albergue Luz de Fromista (사립)

 

 

 

 

아침에 일어나보니 어제 널어놓은 옷가지들이 여전히 축축합니다.  밤사이 주인아주머니께서 라디에이터를 꺼 놓으신 것이었습니다.  전날 밤에 옷을 말리기 위해 계속 가동해 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드렸었는데, 아무래도 의사소통에 문제가 조금 있었나 봅니다.

 

급하게 옷가지를 걷어서 숙소에 있는 건조기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저희보다 몇 분 앞서 콜롬비아 출신 캐나다 태생의 여성 순례자분이 먼저 도착해서 건조기를 이미 가동을 시작하셨습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저희를 보더니 본인은 건조할 것이 장갑 1켤레뿐이라고 하시며 가동 중이던 건조기를 멈추고 저희 빨래를 넣고 같이 돌리자고 제안해 주셨습니다.  건조기 가동비용이 4유로 정도 했던 것 같은데, 비용도 본인이 이미 지불했으니 그냥 같이 돌리자고 합니다.

 

까미노 길에는 엔젤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젖은 빨래들을 무사히 건조하고 숙소에서 제공해 주는 간단한 조식을 챙겨 먹고 길을 나섰습니다.  저희가 묵은 숙소는 까스트로헤리스 마을 초입에 있고 Collegiate of Santa María del Manzano(번역하면, 산타마리아 델 만사노 대학)이라는 건물 바로 앞에 있었습니다.

 

 

 

마을을 빠져나오는 길에 멀리 보이는 언덕위에 아주 오래되어 무너진 성벽 터처럼 보이는 건물이 보였습니다.  구글지도로 찾아보니 까스트로헤리스 성(Castle of Castrojeriz) 이라고 나옵니다.

 

 

 

어느 때 부터인가 저희는 아침 일찍 나서지 않고 해가 뜨고 난 후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따스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힘차게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아내의 왼쪽 무릎 통증은 낫지를 않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한번 생긴 물집은 없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물집이 잡혀서 속도를 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천천히 걸어가면 눈앞에 펼쳐진 경치들과 맑은 공기를 더 오랫동안 즐기면서 갈 수 있습니다.

 

날씨가 추운지 콧물이 줄줄 흘러내립니다.  흐르는 콧물을 닦으며 바르세나 다리(Puente de Bárcena)를 지나 모스뗄라레스 언덕(Alto de Mostelares)을 향해 걸어갑니다.

 

 

 

모스뗄라레스 언덕(Alto de Mostelares)은 해발이 약 940m 정도 되고 바르세나 다리에서의 길이는 약 1.5km 정도 되어서 약 30여분을 열심히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추운 날씨였지만, 배낭을 멘 등줄기에는 땀이 흘러서 잠시 겉옷을 벗고 땀을 식혀야 하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좋은 날씨에 맑고 시원한 공기를 마시면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언덕 정상에 오르기 전에 나오는 바위에 걸터앉아 탁 트인 경치를 배경으로 사진을 하나씩 찍으며 잠시 숨을 돌립니다.

 

 

 

생각보다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면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이 나오지만 바람이 많이 불었기 때문에 오래 앉아있기는 힘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추워지는 날씨 때문인지 소변을 보게 되는 주기가 날이 갈수록 짧아지는 현상으로 화장실을 가야 하는 횟수가 늘어났습니다.  언덕에 올랐을 때는 이미 화장실이 급해진 상황이라 쉬지 않고 계속해서 길을 걸어갔습니다.

 

 

 

이제 언덕길을 따라 내리막이 시작됩니다.  아내의 무릎 통증과 한번 생긴 후로 없어지지 않던 물집으로 인해서 내려가는 길은 더욱 어렵습니다.  내리막을 내려간 후에는 밀밭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마을까지는 약 2시간 가량 더 걸어가야 했기에 열심히 걸어 나갔습니다.

 

 

 

저희보다 앞서 걸어가고 있던 '까패(까미노패밀리)' 멤버들이 먼저 도착한 마을들에 대한 정보를 메신저를 통해 알려줬는데, 거의 대부분 후발주자로 걸어가던 저희들에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안티모' 동생이 이떼로 데 라 베가(Itero de la Vega) 마을에 도착했는데 들어갈 수 있는 카페나 바(Bar)가 없고, 슈퍼마켓을 하나 겨우 찾아서 노상 테이블에 앉아서 샌드위치를 먹었다고 알려왔습니다.  날씨가 추워져서 중간중간에 실내에 들어가서 몸을 녹여줘야 할 정도로 날씨는 쌀쌀했고 바람이 강했습니다.

 

걱정을 하며 걷고 있는데 '안티모' 동생보다 조금 뒤에서 '도나'양과 같이 걷던 '따수미'양이 카페를 하나 찾았다고 또 연락이 왔습니다.  저희도 잠시 후 그 곳에 도착하여 몸을 녹이며 샌드위치와 따뜻한 커피를 마셨습니다.

*Bar Tach 카페 위치: https://maps.app.goo.gl/t73hnpmV8AzUcm8x6

사실 추운 날씨와 급한 화장실 상황만 아니었으면 가지 않았을 것 같은 곳입니다.  오래 되어보이는 하몽과 또르띠야를 오래되어 보이는 빵에 넣어서 먹었는데, 가격은 그 어느 곳들 보다도 많이 비싼 곳이었습니다.  그래도 본격적으로 겨울 까미노로 접어들고 있는 지금과 같은 시점에는 문을 연 곳이 별로 없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으로 먹고 쉬어가야 합니다.


 

 

 

 

파란색의 하늘과 넓게 펼쳐진 밀밭이 끝없이 이어지는 듯한 길을 걸어갑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걷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사진은 이쁘게 잘 나왔습니다.

 

 

 

어느덧 오늘의 목적지 프로미스타 도착하기 전 마지막 마을인 보아디야 델 까미노(Boadilla del Camino)에 도착했습니다.  그냥 지나치려 했다가 '미카엘라'양이 커피가 맛있는 곳이라고도 했고 화장실도 한번 가야 했기에 '미카엘라'양이 알려준 En el camino라는 곳으로 갔습니다.

 

*En el Camino 호텔 위치: https://maps.app.goo.gl/PWv4G8r4zxY2A5fs7

 

En el Camino는 카페와 식당이 같이 있는 호텔이었습니다.  일반 카페 처럼 실내도 있고 조금 더 들어가니 탁 트인 유리벽으로 된 고급 레스토랑 같은 느낌의 식사 공간도 있었습니다.  까스트로헤리스에서 같은 숙소에 묵었던 순례자분 한분은 그곳에서 스테이크를 먹고 계셨습니다.  조금 있으니 요셉 아저씨도 들어오셨는데 그분은 오늘 이곳에서 묵는다고 하십니다.


 

 

 

 

저희는 음료만 마시고 잠깐 쉬다가 다시 오늘의 최종 목적지 프로미스타로 출발했습니다.  보아디야 델 까미노 마을을 벗어나자 얼마후 시냇물을 따라 난 길이 나타났습니다.  가을 단풍으로 노란 빛깔의 나뭇잎과 흙길, 그리고 길을 따라 난 시냇물과 파란 하늘, 한 폭의 그림과 같은 아름다운 풍경이 한참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약 40여분 가량 걸어가니 이 냇가를 건너는 다리가 나왔습니다.  그 다리를 건너가면 이제 프로미스타입니다.  참고로 위 시냇물은 까스띠야 운하(Canal de Castilla) 였습니다.  저희가 갔을 때 운영되고 있진 않았지만 유람선을 타고 관광할 수 있었습니다.

 

 

 

운하의 물을 댐처럼 가둘 수 있어 보이는 오래되어 역사적인 시설로 보여지는 느낌의 다리를 건너서 프로미스타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이런 시설물을 보는 것도 순례길을 하나의 묘미입니다.  체력이 더 좋았더라면, 그리고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더 충분히 있었더라면, 방문할 지역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해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올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그래도 지금 이렇게 이곳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마을로 들어갑니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왔지만 잘 도착했습니다.  특히 아내는 왼쪽 무릎과 물집이 난 발 그리고 엉덩이부터 종아리에 이르는 다리 전반의 근육통을 호하던터라 더 힘들었을 것입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어제에 비하면 객관적으로는 훨씬 더 수월한 길이었겠지만, 누적된 피로감으로 인해 만만치않았던 길이었습니다.

 

숙소에 도착한 시간을 보니 오후 4시가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먼저 도착한 패밀리들은 이미 샤워를 마치고 빨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샤워는 하지 않고 양말만 후다닥 같이 빨래를 해서 널어놓고 오후 5시에 문을 여는 슈퍼가 있다고 하니 그곳에 가서 장을 봐와서 저녁식사를 해 먹기로 했습니다.

 

메뉴는 파스타로 정해졌고 파스타와 함께 스페인식 순대도 같이 사오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숙소 이야기 먼저 하겠습니다.

오늘 묵을 숙소는 '미카엘라'양이 예약해준 알베르게입니다.  사립 알베르게였는데, 저희가 도착하니 거의 모든 베드가 가득 차서 사람들로 북적였던 곳이었습니다.  중간중간에 저희가 묵은 곳들 중에는 사람이 없어서 조용한 곳들이 제법 많이 있었는데 오늘 여기는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되었는지 신기했습니다.

 

*Albergue Luz de Fromista 알베르게: 2층 침대가 6~10개 정도씩 배치되어 있는 도미토리가 여러개 있었습니다.  남녀가 구분된 욕실과 화장실이 있었고요, 1층에는 조리가 가능한 주방과 빨래터 및 빨래건조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도미토리 옆에는 휴식할 수 있는 공간에 여러 테이블들이 있었습니다.  시설은 그냥 보통 수준의 알베르게 였습니다.  조금 허름한 느낌이라고 하거나 반대로 그래서 조금 아늑하다고 느낄 수 있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숙소 위치는 https://maps.app.goo.gl/aDu1STdR3FW8svEZ7 입니다.


 

 

 

사실 이 숙소 자체만 본다면 큰 임팩트는 없는 곳일 수 있었으나 이곳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몇 가지 에피소드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이곳에서 저희 '까패(까미노패밀리)'들과 함께 저녁을 만들어 먹었는데, 우리 '까패'들은 본의 아니게 스페인식 순대를 강제로 시식당하게 된 것입니다.

 

아내는 부르고스 지방을 지나면서 스페인식 순대 요리에 소위 '꽂혀' 있었는데, 아니 프로미스타 슈퍼마켓에 부르고스 특산 순대 모르찌야가 있었던 겁니다.  아내는 인당 1줄씩은 먹어야 한다며 그 순대를 저희 사람 수대로 골라 계산대 위에 올렸습니다.

 

그렇게 그날 저녁 식사 테이블 위에는 팔뚝만 한 사이즈의 스페인식 대왕 순대가 각기 하나씩 올려지게 되었습니다.  식탁 위에 올라온 순대의 사이즈는 매우 거대했습니다.  포장비닐을 벗기니 그 형상은 약간 무서운 느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토마토스파게티와 곁들여 먹으니 맛은 먹을만 했습니다.  그렇게 그 날 패밀리들은 순대를 남기지 않고 거의 다 먹었다고 합니다ㅎㅎ.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참 재미있었던 순간이었습니다.  혹시라도 그 당시 억지로 드신건 아니었던가 싶네요 우리 패밀리님들~

 


*숙소 길 건너편에 작은 슈퍼마켓이 있었습니다.

슈퍼마켓 위치: https://maps.app.goo.gl/P16TxG8D1cnExXpSA


 

 

 

두 번째 에피소드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베드로 돌아온 후에 있었던 일입니다.

 

아내는 계속되는 무릎 통증을 비롯해서 발과 다리 근육 전반의 통증을 호소했었는데, 마침 우리 까패의 든든한 천사였던 '도나'양은 물리치료 방면의 전문가로 활동하던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식사 후에 마사지용 오일을 들고 저희 베드로 와서 약 40여분 동안이나 아내의 종아리와 허벅지에 뭉친 근육들을 풀어주었습니다.

 

양쪽 다리 모두다 고관절부터 발목까지 하나하나 눌러주고 주물러주니 아내 입에서는 아프면서도 시원한 탄성이 계속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도나'양은 저에게 뒤에 서서 하는 것을 보고 배운 후에 다음부터는 제가 아내에게 해주라고 주문하였습니다.  저는 '도나'양이 하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며 뒤에 서 있었습니다.

 

그때, 미국 유타 주에서 오신 아주머니 순례자분께서 제 옆에 오시더니 "저도 당신 뒤에 줄을 서면 되는 건가요? 그 마사지 저도 너무너무 받고 싶네요"라며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웃으셨습니다.  덕분에 다 같이 한바탕 크게 웃을 수 있었습니다.  서구권 사람들의 이런 유머는 배우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날 본인도 많이 피곤했을 텐데 아내의 근육을 풀어준 '도나'양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합니다.  정말 천사도 그런 천사가 없습니다.  존경심 마저 들 정도입니다.

 

'도나'양의 이 헌신으로 아내는 다음날 아주 상쾌한 컨디션으로 일어났다고 합니다.

 

 

 

긴 하루가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길은 힘들지만 가지 못할 길은 없고, 어려운 상황에 건네어오는 도움의 손길이 있으며, 각자의 힘듦에 다툴 순 있으나 다시 웃으며 풀 수 있음을 생각하며 잠자리에 누웠습니다.

 

멀리서 '안티모'의 큰 웃음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들은 밤늦게까지 카드 게임을 했다고 합니다.

 

 

 

 

내일은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로 갑니다.  내일을 기점으로 저희들의 순례 여행은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그럼 다음편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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