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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3년 10월 ~ 11월에 부부가 같이 다녀온 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길)의 기록입니다.
그 당시 틈틈이 적어두었던 기록과 기억을 토대로 순례여행 중에 있었던 일들과 당시 저희들의 느낌을 솔직하게 담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또한 순례길을 준비하는 예비 순례자분들에게 최대한 도움이 되고자 필요한 정보들을 정리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저희들의 인생에서 값지고 소중한 시간들이었던 이번 순례여행의 기록들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글이 제법 길기 때문에 후기글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읽으시길 권합니다.
도움이 될 만한 정보성 내용들은 볼드체(굵은 글씨)와 명조체의 푸른색 글씨로 표기해 놓았습니다.
정보가 필요하시다면 볼드체와 명조체의 푸른색 글씨 부분들 위주로 참고하세요.
그럼, 오늘도 부엔 까미노!
2023년 10월 31일(화)
저희들의 순례 여행을 구분 지으라고 한다면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 전(前)과 후(後)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는 저희들의 순례 여행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순례 여행을 통틀어 최고의 가성비 숙소를 발견한 곳이기도 했고, 또 순례 여행을 통틀어 소고기를 가장 배부르게 먹었던 날이기도 합니다 ;D
이동구간: 프로미스타(Frómista) -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Carrión de los Condes)
이동거리: 약 19.0km
출발시간: 07시 40분
도착시간: 13시 10분
도착숙소: Hostal Albe (사립 호스텔)
어제 '도나'양이 선사해 준 천상의 터치 덕분인지 아침에 일어난 아내의 다리 컨디션은 아주 좋았습니다. 뭉쳤던 근육들이 많이 풀렸나 봅니다. 그리고 오늘은 걸어야 할 거리도 비교적 짧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습니다.
알베르게를 나와 코너를 돌자 아침부터 문을 연 베이커리가 보였습니다. 안에는 다른 순례자들 몇몇이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게 보입니다. 저와 아내도 들어가서 주문을 하였습니다. 아내는 그 베이커리에서 크기가 가장 큰 빵 하나와 쿠키를 골랐습니다.
이 큼직해 보이는 빵은 보기와 다르게 아주 x 매우 x 100 말랑말랑한 식감의 빵이었습니다. 표면은 설탕으로 캐러멜라이징이 되어서 아작아작했고, 식감은 부드러웠습니다. 이 빵을 한입 베어 물면 마치 설탕을 발라놓은 부드러운 한국의 꽈배기를 한입 먹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부드러운 식감의 빵은 입 안에서 빠르게 녹아없어졌습니다. 정말 맛있었습니다.
(*PANADERÍA SALAZAR 베이커리 위치: https://maps.app.goo.gl/emgoBwYXnjJxu5L37)
어제 같은 알베르게 맞은 편에서 주무셨던 이탈리아의 중년 여성 순례자 두분이 들어오셨습니다. 들어와서 한참을 둘러봐도 빵을 못 고르겠던지 저희 쪽을 쳐다봅니다. 저와 눈이 마주친 분이 눈빛으로 저희가 먹고 있는 빵이 맛이있는지 물어보는 듯 합니다. 저희가 먹던 빵을 조금 떼어서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분들은 저희 빵을 한입 맛보시더니 곧바로 저희랑 같은 빵을 주문하셨습니다. 맛이 괜찮았나봅니다.
저희는 빵이 너무 커서 다 못 먹을 줄 알고 남은 걸 싸서 가려고 주인아주머니께는 비닐 포장을 해달라고 문의를 할 참이었는데 먹다보니 다 먹어 버리고 말았네요ㅎㅎ.
든든히 아침을 먹은 후 힘차게 출발했습니다. 한결 가벼운 컨디션의 아내와 저는 열심히 걸어갔습니다.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를 가리키는 큰 표지판이 나옵니다. 표지판에 핑크색이 등장한 것은 아마 이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손을 잡고 걷고 있는 저희들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 왔습니다. 순례길 중간 중간에 만나며 걸어오던 싱가폴의 중년 부부였습니다. 저희 결혼한지 얼마나 되었냐고 물어봅니다. 올해가 11년 기념일이었다고 말해주자, 남자 아저씨는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자기들은 20년이 넘었기 때문에 손을 잡고 걷지 않는다며 저희들이 젊어서 보기 좋다는 농담조의 말을 해주십니다.
50대 중후반으로 보이던 그들 눈에는 저희들은 아주 젊고 싱싱한 부부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패밀리들 사이에서는 우리가 가장 노년층이었습니다. 이 세상 만사가 다 상대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절대적인 기준과 잣대를 내세우는 주장이 어쩌면 어리석은 주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 구간에서 재미있는 것은 프로미스타를 떠난 후 만나게 되는 3개의 마을 이름 끝에 모두 다 캄포스(Campos)라는 이름이 붙는 다는 것입니다. 포블라시온 데 캄포스(Poblacion de Campos), 레벤가 데 캄포스(Revenga de Campos), 비야르멘테로 데 캄포스(Villarmentero de Campos). 차도와 이어지는 까미노길을 따라서, 재미있는 이름의 마을과 마을을 건너 열심히 걸어갔습니다.
잘생긴 흑마를 만나 인사도 나누고, 제 나이와 같은 번지수의 집 앞에서 기념촬영도 하고, 마을 공원에 있는 멋있는 나무도 찍어봅니다. 하지만 날씨가 흐려서 아쉽고, 생각보다 제 어깨가 좁아서 아쉽습니다.
아침엔 가벼운 컨디션으로 출발했지만, 약 10km가량을 걸어가니 아내에겐 다시 어제와 같은 근육통이 찾아왔습니다. 근육통과 함께 무릎통증도 시작되었습니다. 아내가 걸어가는 모양새가 영 좋지 않습니다. 많이 힘들어 보입니다.
순례길에서 만났던 '사이먼' 아저씨가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Listen to your body
이대로 계속 걸어가도 괜찮은걸까?
욕심내어 걸어간 후 심각한 후유증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닐까?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제가 아팠다면 꾸역 꾸역 걸어갔을 것이지만, 아내가 절둑거리며 걸어가는 뒷모습을 일주일이 넘는 시간을 보고 있자니, 이래선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우선 오늘의 목적지까지는 도착하고 나서, 패밀리들을 먼저 보내고 우리는 천천히 다리가 회복될 때까지 쉬었다가 출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걸어갈 즈음 구름이 조금씩 걷히고 푸른 하늘이 나타났습니다. 푸른 하늘 아래 귀여운 빨간색 자동차가 나타났습니다. 마치 저희들에게 힘을 내라고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힘을 내어 조금 더 걸어가니 오늘의 목적지 까리온 입구를 알려주는 표시판이 나옵니다. 반갑게 마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원래는 공립 알베르게로 갈 계획이었으나, 우리들의 컨디션으로 봤을 때 무리가 될 것 같아서, 2인실이 있는 호스텔을 찾아서 예약했습니다. 그러다가 2인실인데 1박에 30유로(EUR), 지금까지 알아보았던 곳들 중 전체 순례길을 통틀어서 가장 저렴한 곳을 찾아내었습니다.
까리온에 도착한 저희는 구글맵을 켜고 숙소를 찾아가 체크인을 했습니다. 친절한 노부부가 운영하는 호스텔은 마을의 중심부를 지나서 더 들어가서야 나왔습니다.
체크인을 하고 Dia 슈퍼마켓으로 가서 간단히 장을 봐 온 후 숙소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Dia 슈퍼마켓 위치: https://maps.app.goo.gl/WAYN2sT11LXzDLkY8)
*Hostel Albe: 호스텔은 El Bar de Pichi라고 하는 식당 건너편의 골목 끝에 있습니다.
- Hostel Albe 위치: https://maps.app.goo.gl/rtwrq7tkU9vYtXSt5
- El Bar de Pichi 식당 위치: https://maps.app.goo.gl/3cptVBwXqDdd3BsY6
순례길에서 만나게 되는 알베르게의 인당 숙박비용은 공립 알베르게가 보통 10유로(EUR) 전후 였었고, 사립 알베르게는 보통 15유로(EUR) 전후였습니다.
그런데 독립된 전용 화장실과 욕실이 있는 2인실이 1박에 30유로라니, 정말 믿기지 않는 가격이었습니다.
게다가 내부 관리 상태도 매우 좋았습니다. 침구류나 방의 컨디션도 괜찮았습니다. 방과 건물 내부의 디자인 및 인테리어가 강력학 주황색 베이스이긴 했지만 가격을 생각한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욕실에는 욕조도 있었고 뜨거운 온수가 콸콸 나왔으며, 방안에 있는 라디에이터는 빵빵하게 돌아갔습니다. 조리가 가능한 주방이 있었고, 무엇보다 가장 놀랐던 것은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과 식기류가 지금까지 묵었던 모든 숙소를 통틀어 가장 크고 넓었으며 모든 도구들이 잘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저희는 점심으로 스페인식 순대에 꽂힌 아내가 어제 프로미스타에서 사놓은 모르찌야를 꺼내서 조리를 해 먹었습니다. 이제 순대는 그만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목 넘김이 힘들 땐 오렌지 주스와 탄산음료를 함께 마시니 잘 넘어갑니다.
저희가 이 숙소를 처음 발견하고 패밀리들에게 알려주었더니, '도나'양과 '따수미'양도 나중에 이곳으로 와서 체크인을 했습니다. '안티모' 동생과 '미카엘라'양은 '루이스'와 함께 공립으로 갔다고 합니다.
처음에 저희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숙소가 너무 좋아서 이 마을에서 2~3박을 하며 충분한 휴식을 가지고, 몸의 컨디션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되면 다시 출발하려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식사를 하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곳이 사실 큰 마을은 아니라서 숙소 가성비가 좋다는 것을 제외하면 여기에 굳이 오래 있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저희는 이 곳에서 레온 주의 주도인 레온(Leon)까지 '점프'를 하기로 하고, 레온에서 충분한 휴식을 갖기로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희 순례 여행을 통틀어 가장 잘한 결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돌이켜보면 레온에서의 충분한 휴식을 통해서 저희는 몸도 마음도 훨씬 더 가벼워졌었고,
그 재충전의 시간 덕분에 어쩌면 마지막까지의 순례길을 무사히 마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이날 이후로는 패밀리들과 함께 걸을 수 없게 되었는데, 그렇게 떨어지게 되면서 서로의 빈자리와 존재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더 크게 느낄 수 있었던게 아닌가 합니다. 그래도 SNS를 통해 이들과 지속적인 소통은 할 수 있었고 또 순례 여행 마지막날까지 만남의 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점프(Jump): 순례길 구간을 걸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버스나 택시 또는 기차 등의 교통수단을 통해서 건너가는 것을 의미하는 한국 순례여행자들 사이에서의 은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고민은 많이 되었지만, 결정을 내리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1층 숙소 로비로 내려가서 주인장 아저씨께 레온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방법에 대해 문의를 드렸습니다. 주인장 아저씨께서는 본인이 알아본 후 알려주시겠다며 기다려보라고 하십니다.
잠시 후 주인장 아저씨께서는 마을 초입에 있는 카페에 가면 레온으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고, 버스 출발시간은 대략 오전 11시 30분 정도가 될 거라고 합니다. 내일 체크아웃 후에 11시 정도까지 그 곳으로 가면 될거라고 알려주십니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방으로 올라와 빨래를 하고 휴식을 가졌습니다.
패밀리들은 순례길에서 새로 사귀게 된 잉글랜드 청년 루이스와 함께 우리가 묵는 숙소로 와서 저녁을 해 먹기로 했다고 합니다. 루이스는 영국인 20대 청년인데, 요리를 잘했습니다. 오늘 저녁 주방장은 루이스라고 합니다.
나중에 패밀리들이 공유해 준 사진을 보니 음식들이 근사해 보였습니다. 루이스가 한 솜씨 하나 봅니다.
저희는 점심을 너무 배불리 먹어서 패밀리들과의 식사에 동참하진 못했습니다. 숙소에서 한참을 쉬다가 저녁 8시 30분이 다 되어서 저녁식사를 할 겸 밖으로 나가보았습니다.
'도나'양이 점심때 갔었다고 하는 식당으로 갔습니다. 스페인식 고추 피미엔토스(Pimientos)와 감자튀김을 곁들인 소고기 스테이크가 1kg에 39유로(EUR)라고 합니다. 와우!
소고기 1kg을 주문했습니다.
큼직한 소고기가 두껍고 뜨거운 접시에 받쳐져 나왔습니다. 시원한 콜라도 시켰습니다. 환상적인 저녁식사였습니다. 그런데 먹어도 먹어도 고기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겨우 다 먹고 나중에 계산할 때 보니 거의 1.2~1.3kg 정도 고기가 나왔던 것 같습니다. 정말 배가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저희가 이때 처음으로 제대로 된 소고기 스테이크를 먹었고, 이후 스페인 서북부의 자치구인 '갈리시아(Galicia)' 지방으로 들어간 이후부터는 자주 소고기 스테이크를 사 먹었습니다.
이때 고기 위에 뿌려주는 이 조각 소금이 맛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순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 스페인과 프랑스의 소금을 여러 통 사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식당이름은 Naturale이고, 위치는 숙소 바로 근처에 있었습니다. 고기 좀 먹고 싶다 하시면 가보시길 추천합니다.
(식당 위치: https://maps.app.goo.gl/XmdeRWjsuubZbAZv5)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데 출입문에서 왁자지끌한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고개를 돌려서 보니 얼굴에 분장을 한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와 식당 주인장 아저씨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다른 한 손에는 여기 저기서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간식들이 비닐 봉투에 담긴채 자그마한 아이들 손에 들려 있었습니다.
네, 오늘은 10월 31일 핼러윈 데이였네요.
주인장 아저씨는 유쾌한 표정으로 아이들에게 음료를 한 잔씩 돌렸고, 아이들은 재미있어하는 표정으로 하지만 어른스러운 몸짓으로 잔을 금세 비우더니 밖으로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귀엽습니다.
배가 불러서 마을을 잠깐 걷다가 숙소로 들어왔습니다.
저희는 내일 버스를 타고 레온까지 점프를 할 예정입니다. 레디고스(Ledigos)와 사하군(Sahagun), 그리고 레리에고스(Reliegos)를 지나서 바로 레온(Leon)으로 가게 됩니다.
레온에서 저희는 맛있는 음식도 먹고, 레온 대성당과 가우디 저택 등 역사적 명소 관광도 하는 등 총 4박 5일간의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레온에서의 다음 이야기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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