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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3년 10월 ~ 11월에 부부가 같이 다녀온 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길)의 기록입니다.
그 당시 틈틈이 적어두었던 기록과 기억을 토대로 순례여행 중에 있었던 일들과 당시 저희들의 느낌을 솔직하게 담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또한 순례길을 준비하는 예비 순례자분들에게 최대한 도움이 되고자 필요한 정보들을 정리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저희들의 인생에서 값지고 소중한 시간들이었던 이번 순례여행의 기록들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글이 제법 길기 때문에 후기글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읽으시길 권합니다.
도움이 될 만한 정보성 내용들은 볼드체(굵은 글씨)와 명조체의 푸른색 글씨로 표기해 놓았습니다.
정보가 필요하시다면 볼드체와 명조체의 푸른색 글씨 부분들 위주로 참고하세요.
그럼, 오늘도 부엔 까미노!
2023년 10월 22일(일)
나헤라(Nájera)는 과거 기독교 왕국과 이슬람 왕국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고 합니다. 로마 시대에 세워진 이 도시를 '바위 사이의 도시'라는 의미의 아랍어 '나사라(Naxara)'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의 높은 바위산들이 둘러싸고 있는 느낌이었으며, 그 바위산들은 마치 거대한 벌통을 연상시키는 듯 구멍이 나있고 색상은 붉은색 바위산이었습니다.
이동구간: 로그로뇨(Logroño) - 나헤라(Nájera)
이동거리: 약 29.6km
출발시간: 06시 26분
도착시간: 15시 20분
도착숙소: Albergue de Peregrinos Albergue Nido de Cigueña (사립 알베르게)
오늘은 약 30km를 걸어가야 하는 긴 구간으로 저희는 조금 일찍 출발했습니다. 로그로뇨에서 이틀을 쉬어서 그런지 아침 컨디션이 좋습니다. 숙소에서 가까운 패밀리들이 묵은 위네데르풀 알베르게 앞을 지나갑니다. 유리 안으로 '선생님'과 다른 패밀리 멤버들이 출발 준비를 하고 있는게 보입니다. 잠깐 들어가 '선생님'과 포옹을 하고 마지막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의 로그로뇨 시내는 노란 가로등 불빛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로그로뇨를 빠져나오는 타파스 거리 인근의 길거리가 온통 쓰레기와 불쾌한 냄새(사람의 소변 냄새)로 가득차 있습니다. 어제 밤새 놀던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과 술병들, 그리고 소변냄새들로 추정이 됩니다. 골목 여기저기에는 밤새 마시며 놀다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리는 사람들, 이제야 귀가하는 듯 여럿이 모여 소란스럽게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어젯밤의 낭만적인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이곳은 동남아시아나 중국의 흔한 시장 뒷골목 길바닥과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입니다.
이 길을 지나며 사람사는 곳은 다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양국가의 사람들, 유럽 사람들,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의 사람들도 결국에는 '사람'인 것이죠. 스페인에, 그리고 유럽에 조금 실망스러운 아침이었습니다. 아내는 그 동안 가지고 있던 '유럽에 대한 환상'이 이 한 순간에 사라졌었다고 회상합니다.
골목을 빠져나오는 냄새를 견디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숨을 크게 참고 빠르게 걸어서 중심가를 빠져나와서 차도를 따라 걸어갑니다. 약 30여분을 걸어 첫째 날 묵었던 Parque 호텔이 거의 다 와 갑니다. 이 호텔은 공원 옆에 있어서 이름이 Parque 호텔인 듯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 배에서 심상치 않은 매우 긴급한 신호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출발하기 전에 화장실을 시원하게 다녀왔는데 갑자기 이런 신호가 오니 난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음 마을인 나바레떼는 약 12km를 걸어가야 나옵니다. 12km는 커녕 1.2km도 갈 자신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급히 발걸음을 돌려 첫째날 묵었던 Parque 호텔로 갔습니다. 다행히 리셉션의 잘생긴 멋쟁이 아저씨는 어제 저희들의 체크아웃을 도와주신 분이어서 저희를 기억을 했습니다. 사정을 이야기하고 호텔 화장실을 사용하였습니다. 죽다 살아난 기분이었습니다. 나오는 길에 잘생긴 리셉션 아저씨께 "You saved me"라고 말해주니 아저씨가 크게 웃으며 인사를 해줍니다.
로그로뇨를 빠져나와 1시간 정도 걸어가자 그라헤라 저수지(Pantano de la Grajera)를 끼고 있는 그라헤라 공원(Parque de la Grajera)을 지나갑니다. 분명히 컨디션은 좋은데 숨이 찹니다. 걷는 것을 하루 쉬었다가 걸으니 그런 것 같습니다. 습관에도 관성의 힘이 작용하는 것이 신기함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마침 벤치가 있어서 배낭을 내리고 잠깐 앉아서 쉽니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가지고 있던 간식을 꺼내 한 입 먹습니다. 앉아 있으니 순례길에서 처음 보는 씩씩하고 젊은 한국인 청년과 외국인 순례자들 몇 명이 인사를 하며 지나갑니다.
호수를 끼고 있는 공원의 공기가 시원하고 맑습니다. 그런데 벤치 뒤쪽에서 정말 경쾌하고 명랑한 새소리가 들려옵니다. 마치 오락실 게임기에서 나오는 듯한 소리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새소리인 것 같습니다. 새소리에 힘을 내어 다시 걷기 시작합니다.
이윽고 다음 마을인 나바레떼(Navarrete)가 나옵니다. 나헤라로 가는 길에는 목재 공장들이 종종 눈에 띄었던 것 같습니다. 언덕 위에 큰 황소 형상의 조형물이 보인다면 이제 나바레떼에 다 온 것입니다. 와인농장도 하나 지나갑니다.
오전 10시 경 나바레떼에 도착하여 순례길 어귀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따뜻한 커피와 빵을 하나씩 먹었습니다. 아내는 어딜 가도 실패하지 않는 나폴리따나 꼰 초코라떼를 시키고 저는 실패할 확률이 높은 이름 모를 파이 하나를 시켰습니다. 맛있습니다. 쌀쌀한 날씨에 떨다가 따뜻한 실내에서 따뜻한 커피와 함께 먹으니 무얼 먹어도 맛있을 겁니다.
*카페: 이름은 Bocateria Move 이고, 순례길 어귀에 있어서 접근성이 좋습니다.
(카페 위치: https://maps.app.goo.gl/qqjkFfw8YmDBkcZb6)
*나폴리따나 꼰 초코라떼: Napolitana con Chocolate 또는 Napolitana de Chocolate 라고 합니다. Napolitana는 이탈리아에서는 나폴리 지방의 피자를 의미하는 단어인 것 같으나, 스페인에서는 이렇게 생긴 모양의 빵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스페인 순례길 현지의 카페나 바에서는 '나폴리따나'라고만 해도 초콜릿이 들어간 이 빵을 주기도 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에겐 프랑스어인 '뱅오쇼콜라(Pain au chocolat)'로 더 잘 알려진 빵입니다.
나바레떼 마을을 지나 벤토사(Ventosa)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벤토사 마을에서는 조금 신기한 경험을 했었습니다. 아직도 왜 그런지 알 수가 없는 일이었는데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아시는 분이 있다면 알려주세요ㅎㅎ. 마을 초입에는 벤토사 마을이 유명 예술인들과 프랑스길을 걷는 순례자들과 협력하여 진행 중인 '1 Kilometro de arte'라는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안내문구가 있는 표시가 있고,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는 그러한 예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보이는 구조물이 있으며 그 앞에는 사진작가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벤토사라는 마을은 뭔가 예술적인 마을인가 보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며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길을 가던 저희를 사진찍는 여성 분을 한 명 만났습니다. 저희 앞에서 저희가 다가가는 동안 계속해서 저희를 찍었습니다. 마을 입구에서 본 예술 프로젝트가 생각나서 순례자들을 찍어서 자료를 남기는 건가 추측하며 말을 걸어보니 영어를 전혀 못하셨습니다. 그렇겠거니 하고 기념으로 같이 셀피 사진을 한 장 찍고 걸어갔습니다.
조금 걸어가니 하얀색 소형차 한대가 저희 뒤에서 저희를 앞질러 지나갔습니다. 조금 더 걸어가니 아까 저희를 찍던 그분이 길 옆 언덕에 엎드려 저희를 또 찍고 계신 겁니다. 저희를 앞질러 지나갔던 그 하얀색 소형차는 그분이 타고 지나가신 겁니다. 그분이 왜 그랬는지, 다른 순례자들에게도 그러는 건지, 저희에게만 그러는 건지, 사진을 찍는 목적은 무엇인지 궁금했으나,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혹시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 계신가요?ㅎ
벤토사 마을에서 패밀리들과 간단히 점심식사를 하고 가기로 합니다. '부엔까미노'라는 반가운 이름의 카페가 초입에 있습니다. 분위기도 좋아보여 반가운 마음으로 들어가 식사를 하였습니다만, 음식의 맛과 식당의 전반적인 관리상태는 좋지 않았습니다. 컵이나 식기들의 위생상태도 별로였고, 무엇보다 음식의 맛이 좋지 않았습니다.
(Buen Camino 카페 위치: https://maps.app.goo.gl/nfFh8kSjWwfCPaHp6)
그렇지만 맛이 없는 음식이라고 해도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먹으면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날씨가 쌀쌀한 만큼 하늘은 맑고 높았습니다. 이쁜 벤토사 마을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언덕 위에 있는 벤토사 마을의 유명한 성당인 산 사뚜르니노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San Saturnino)이 보여 사진을 찍고 갑니다. 그 앞에는 순례길 위에서 지속적으로 오며 가며 만났던 싱가포르 부부 순례자분들이 사진을 찍고 계십니다. '부엔까미노' 반갑게 인사하며 지나갑니다.
길 위에서 이런 저런 조형물과 표지판을 만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길거리의 표지판들이 눈에 많이 들어오는 편입니다. 그림이나 글로 된 이 나라사람들의 표현 방식을 보는 게 재미있습니다.
산 안톤이라 불리는 언덕길(Alto del San Anton)을 지나갑니다. 맑고 푸른 하늘과 드 넓은 포도나무밭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룹니다. 눈 앞에 보이는 모든 풍광을 다 담고 싶지만, 대자연을 담기엔 그 어떤 렌즈도 부족함을 느낍니다.
이제 나헤라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좋은 컨디션으로 시작하였으나 오후가 되니 오른쪽 종아리 근육과 발바닥이 많이 아팠습니다. 아내는 양쪽발에 물집이 크게 잡혔고, 무릎 통증도 계속되어 오후에 걷는 길은 다소 힘들었습니다.
사진을 찍지는 못했으나 순례자를 위한 시가 쓰여진 벽을 지나 드디어 나헤라에 도착합니다. 순례자를 위한 시는 에우게니오 가리바이 신부님이 쓰신 시라고 합니다. 사진은 구글에서 캡처한 사진을 첨부합니다.
(순례자를 위한 시가 쓰여진 벽의 위치: https://maps.app.goo.gl/dY1vH3nv7W9Vx88KA)
일요일이라 그런지 나헤라 마을은 전반적으로 썰렁한 느낌입니다. 저희가 예약한 숙소로 가는 길에 중국요리 식당을 발견합니다. 있다가 저녁에는 다 같이 이 식당으로 와서 식사를 하기로 하고 숙소로 갑니다. 오늘 저희가 묵을 숙소는 조금 긴 이름의 사립 알베르게 Albergue de Peregrinos Albergue Nido de Cigueña 입니다. 체크인을 하고 개인정비를 합니다. 패밀리들은 4인실 베드를, 저와 아내는 2인실로 잡았습니다. 4인실 베드는 2층 침대일 것으로 예상했으나 모두 1층 단층 침대입니다. 저희가 체크인을 마치자 주인장이 거실의 벽난로를 켜고 장작 나무를 넣어서 실내를 따뜻하게 데워주십니다. 아기자기하고 깔끔한 인테리어의 거실과 주방은 벽난로와 함께 아늑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또 외출을 하려는 저희에게 나헤라 마을 지도를 하나 주고 간단히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Albergue de Peregrinos Albergue Nido de Cigueña 사립 알베르게: 나헤라 마을의 안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산 후안 데 오르떼가 다리(Puente San Juan de Ortega)를 통해 나헤리아(Najerilla) 강을 건너서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깔끔하고 괜찮은 알베르게였습니다. 주방도 식기가 갖추어져 있고 조리도 가능했습니다. 단, 샤워실이 남녀 각 1곳만 있었고 샤워실/화장실이 조금 좁은편이고 물건을 놔둘 선반 같은 것들이 없어서 조금 불편했습니다. 전반적으로는 괜찮았습니다.
(알베르게 위치: https://maps.app.goo.gl/uqdbiWR2WniZKwA48)
숙소는 나헤라를 둘러싸고 있는 신기하게 생긴 바위산 바로 아래에 자리 잡고 있어서 숙소 밖으로 나와 고개를 돌리니 크고 붉은 바위산이 보였습니다. 거대한 벌통처럼 구멍도 여기저기 뚤려있습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모든 슈퍼마켓이 문을 닫았고, 아시안 마켓 한 군데만 문을 연것 같습니다. 문을 연 약국은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슈퍼마켓에서 필요한 물품을 사 옵니다.
(아시안 마켓 위치: https://maps.app.goo.gl/nqJc9Eu4bdjnwMwn6)
저녁 7시 30분, 저녁 오픈 시간에 맞춰 식사를 하러 올 때 봐 놓았던 중국 식당으로 갑니다. 다른 한국인 순례자분들 한 무리가 저희보다 먼저 도착해서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하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의사소통이 거의 안되었고, 구글번역기와 간단한 스페인어를 통해 겨우 주문을 합니다. 그런데 오늘 '쌀(Rice)'이 없어서 볶음밥은 안된다고 합니다. 중국식당에 쌀이 없다는 게 웬 말인가 싶습니다ㅠㅠ. 그럴싸 해 보이는 음식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기대했던 그 맛이 아닙니다. 중국의 맛이 아니라, 스페인화된 중국의 맛이었습니다.
*나헤라의 중국요리 식당 Sofía Restaurante : 모두들 오랜 스페인 음식에 색다른 음식이 먹고 싶던 차에 반갑게 발견한 식당이라 기대를 많이 하고 간 곳이었는데, 솔직히 별로였습니다. 사실 음식을 먹으며 간이 중국의 간이 아니었기에 스페인 분이 조리한 줄 알았는데, 중국분 한분이 주방에서 나오길래 조리는 중국사람이 한 것 같은데 희한하게 맛은 별로였습니다. 이곳은 비추입니다 여러분ㅠㅠ (식당 위치: https://maps.app.goo.gl/xTtdfnoU3DgkWkZD6)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비를 맞으며 숙소로 걸어 들어왔지만 패밀리들 모두 다 다소 아쉬운 기분입니다. '안티모'동생이 오후에 사놓은 와인과 올리브 통조림을 테이블에 준비하고 둘러앉습니다. 각자 가지고 있던 간식거리를 테이블에 풀어놓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나헤라에서의 밤을 보냈습니다.
다음편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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