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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3년 10월 ~ 11월에 부부가 같이 다녀온 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길)의 기록입니다.
그 당시 틈틈이 적어두었던 기록과 기억을 토대로 순례여행 중에 있었던 일들과 당시 저희들의 느낌을 솔직하게 담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또한 순례길을 준비하는 예비 순례자분들에게 최대한 도움이 되고자 필요한 정보들을 정리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저희들의 인생에서 값지고 소중한 시간들이었던 이번 순례여행의 기록들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글이 제법 길기 때문에 후기글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읽으시길 권합니다.
도움이 될 만한 정보성 내용들은 볼드체(굵은 글씨)와 명조체의 푸른색 글씨로 표기해 놓았습니다.
정보가 필요하시다면 볼드체와 명조체의 푸른색 글씨 부분들 위주로 참고하세요.
그럼, 오늘도 부엔 까미노!
2023년 11월 8일(수)
오늘은 마을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중세에는 세 개의 성(城)이 있을 정도로 번성했다던 트리아카스텔라(Triacastela)로 갑니다. 중세에 있었다는 세 개의 성은 현재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오늘은 그 트리아카스텔라로 갑니다. 가는 길에는 우연히 부르고스의 에어비앤비에서 패밀리들과 다 같이 저녁식사를 했었던 대만 아가씨 '치'와 키다리 아가씨 '희진'양 그리고 그라뇽(Grañón)에서 만났던 '플립플랍 걸(flip-flop girl)' 아가씨를 만났습니다.
이동구간: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Villafranca del Bierzo) - 트리아카스텔라(Triacastela)
이동거리: 약 49.6km (14.2km 도보 + 35.4km 택시)
출발시간: 10시 00분
도착시간: 15시 00분
도착숙소: Albergue Pension Lemos (사립)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일정 거리는 걸어서 가고 남은 거리는 그 곳에서 차량으로 이동하여 목적지까지 갈 계획입니다. 오늘은 걷는 거리가 약 14.2km로 부담이 없는 거리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내도 저도 아침에 늑장을 부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숙소의 편안한 침대가 좋아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저희는 라 포르텔라 데 발카르세(La Portela de Valcarce) 마을까지 걸어가서, 거기서 Taxi를 타고 트리아카스텔라(Triacatela)까지 갈 계획입니다.
어제 오후 저희의 도착을 반겼던 비야프랑카델비에르소는 맑고 화창한 날씨를 선사했었으나, 오늘 아침 저희를 떠나보내는 비야프랑카델비에르소는 비를 선사하고 있습니다. 속소 앞에서 비옷을 꺼내 입고 여유롭게 출발을 했습니다. 비야프랑카델비에르소는 비 맞은 모습도 무척 아름다운 풍경의 마을입니다.
순례자 형상의 석상을 따라 포즈를 한번 잡고는 아쉬운 비야프랑카를 뒤로하고 중세의 다리(Puente Medieval de Villafranca)를 건너 앞으로 걸어갑니다.
(*중세의 다리 위치: https://maps.app.goo.gl/n17q4P84drCVazMy6)
고양이도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습니다.
비야프랑카는 표시석도 다른 마을과는 다릅니다. 돌 자체도 매끈한 대리석처럼 보이고, 페인팅도 다릅니다. 고급스러운 느낌이랄까요. 그러나저 남은 거리가 벌써 200km대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이제 남은 거리가 정말 얼마 안 남은 것 같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너무나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약 1시간 가량을 걸어가 페레헤(Pereje) 마을에 도착했으나 문을 연 곳이 없습니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출발했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페레헤 마을을 지나 계속해서 걸어갑니다.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를 빠져나온 후의 순례길은 차도와 발카르세 강(Rio Valarce)을 따라 이어졌습니다. 주변으로는 키 큰 나무들이 무성한데 비가 제법 세게 왔었는지 나무 한 그루가 넘어져 있습니다.
조금 더 걸어가니 순례길은 그 다음 마을인 트라바델로(Trabadelo)쪽으로 꺾어집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한 폭의 그림과 같습니다. 가을 낙엽이 떨어진 길 좌우로는 수목들이 저희를 반기고 있었고, 낙엽들 사이사이에는 밤송이들도 있습니다. 거기에 비까지 더해 완연한 가을 느낌이 흠뻑 묻어나는 풍경입니다.
떨어진 밤송이 옆으로는 성인 3명은 나란히 손을 이어 잡아야 겨우 감싸안을 수 있을 법한 굵은 고목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내는 오랜만에 보는 밤송이가 귀여워 잡아보고 싶으나 날카로운 밤송이 가시에 선뜻 잡을 수가 없습니다.
길 중간에는 누군가 굵은 통나무를 잘라서 정리해 놓았습니다. 통나무에 걸터앉아서 잠깐 쉬었다가 갑니다.
그렇게 촉촉히 젖은 가을을 만끽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마을로 진입하였습니다. 낮 12시가 넘은 시간이라 점심식사를 하고 가기로 하고 마을 초입에 있는 카페로 들어갔습니다.
밖에서 보이던 것과는 달리 카페 내부에는 먼저 온 순례자들이 가득했습니다. 조금 전에 도착해서 이제 주문을 하는 사람, 주문한 음식과 커피를 먹고 있는 사람, 다 먹고 수다를 떨고 있는 사람, 다시 출발하려고 배낭을 꾸리는 사람, 그런데 그중에 낯익은 목소리와 얼굴들이 있었습니다.
부르고스의 에어비앤비에서 패밀리들과 같이 저녁식사를 해 먹었을 때 함께했던 대만 아가씨 '치'와 키다리 아가씨 '희진'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그라뇽(Grañón)에서 같이 아침식사를 했던 '플립플랍 걸(flip-flop girl)' 아가씨도 있었습니다.
☞ 벨로라도로 가는 길에 들렀던 그라뇽에서의 이야기 바로가기
이번 순례길을 걸으며 이들과 지속적으로 함께 했던 것은 아니며 중간중간에 잠깐씩 지나가며 만난 시간들이 대부분이었는데도, 이렇게 예상치 못한 장소와 시간에 만나게 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순례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는 너와 나, 우리는 같은 순례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에서인지 일종의 동질감, 동료의식 같은 감정들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Crispeta Bar: 마을 초입에 위치해 있는 평범한 바(Bar)입니다. 음식의 퀄리티는 사실 평범하거나 조금 못했습니다만, 큰 마을도 아니었고 이곳 외에는 딱히 다른 선택지도 없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함께 걷는 동행들과 쉬어가기에 좋은 곳입니다.
- 위치: https://maps.app.goo.gl/Ei6ENDuRt4KuXXvy6
반가운 인사의 대화를 나누고 저희도 주문을 했습니다. 마카로니 파스타와 수프를 시키니 빵이 제공이 되었습니다. 음식을 먹으며 옆 테이블에 앉은 그들과 대화를 이어갑니다. 오늘 저희들의 계획을 알려주었더니 여기저기서 큰 소리의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저희들이 오늘 오후에 'Taxi'를 타고 그 악명 높은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를 점프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터트린 외마디 탄성 이후에 전해지는 그들의 진심 어린 눈동자에는 '제발, 나도 데리고 가 주오'라는 글자가 선명히 적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과 같은 테이블에 있던 서양 순례자분들도 마음은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모두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청년들이었는데 그들에게도 오 세브레이로는 두려운 구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는 개인적으로 이번 기회에 그 구간을 걸어서 넘지는 못했지만, 다음에 한번 더 기회가 된다면 꼭 걸어서 넘어가 보고 싶은 구간입니다.
그들은 저희보다 먼저 출발을 했고, 식사를 마친 저희도 이제 다시 출발합니다. 밖으로 나오니 비가 그쳤습니다. 아내는 어제 비야프랑카에서 새로 산 빨간색 울 장갑을 끼고 좋아합니다.
약 1시간 정도를 걸어가니 라 포르텔라 데 발카르세(La Portela de Valcarce) 마을이 나옵니다. 마을 입구에는 산티아고 형상의 석상이 세워져 있고, 그 발치에는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와 걸어온 길을 되돌아 가 론세스바예스까지 남은 거리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오늘 저희가 이곳까지만 걷는 이유는 저희가 지도를 통해서 확인해 본 바로는 여기서 몇 km를 더 걸어가도 Taxi를 타면 걸어간 그 길을 다시 돌아 나와서 가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비는 다시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고 마을의 모든 상점은 문을 닫았습니다. 오후 2시였던 것입니다. 큰일입니다. 마을 안으로 더 들어가 보았지만 문을 연 곳이 없습니다.
다시 마을 초입의 카페로 돌아 나왔습니다. 길 한복판에 서서 고민하던 중 카페 외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들이 멀리서 보여 다가가 보았습니다. Taxi 호출이 가능한 전화번호들이었습니다. 그중의 한 번호로 전화를 했습니다. 받지 않습니다. 다른 번호로 걸어보았지만 받지 않습니다. 한번 더 걸어보았습니다. 받았습니다. 다행입니다!
(*호출 Taxi 전단지가 붙어 있던 카페 주소: https://maps.app.goo.gl/tqcpwxe1ieHm8YvY8)
영어를 못하시는 그 분과 겨우 의사소통이 되어서 약 10여분 뒤에 그분이 차를 몰고 저희가 있는 곳까지 나오셨습니다. 7인승 밴 차량입니다. 저희 목적지까지 55유로(EUR)를 부르십니다. 저도 아내도 흥정을 잘하는 편이었으나 그분은 단호한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선택지가 없습니다.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 합니다.
비 오는 차도에는 차량이 거의 없습니다. 다소 연로해 보이는 기사분은 빠른 속도로 산을 넘어갑니다. 차도 주변으로는 비를 맞으며 길을 걷고 있는 순례자분들이 보입니다. 그들이 무사히 잘 걸어가길 마음으로 응원하였습니다.
저희가 탄 차는 악명 높은 언덕을 순식간에 넘어서 트리아카스텔라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저희가 묵을 숙소는 Albergue Pension Lemos라는 사립 알베르게 입니다.
* Albergue Pension Lemos 사립 알베르게: 깔끔한 외관의 이 알베르게는 내부도 깔끔하였습니다. 현대적인 구조와 인테리어로 최근에 새로 지어진 것 같아 보였습니다. 객실은 개별 욕실이 딸린 2인실과 3인실이 있었고, 공용 욕실과 화장실이 있는 12인실 도미토리도 있었습니다.
저희가 도착한 날 그 숙소에 묵는 손님은 저희 부부와 외국인 남성 순례자분 1명뿐이었고 모두 2인실을 사용하였습니다. 비어있는 도미토리를 들어가 보았는데, 철제로 되어 있긴 하지만 깔끔한 새 2층 침대였고 잠금장치가 있는 개인 사물함이 있어서 좋아 보였습니다.
또 도미토리 안에 남녀가 구분된 공용 화장실과 욕실이 있었는데 깨끗했고 무엇보다 공간이 넓어서 아주 좋아 보였습니다. 또 침대가 있는 공간과 구분되는 문이 있고 그 안에 개별 문들이 하나씩 더 있어서 방음도 잘 될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 숙소에는 조리가 가능한 넓은 주방이 있으며, 충분히 조리가 가능할 정도의 식기도 잘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종아리 안마기는 작동이 안 되었습니다.
- 숙소 위치: https://maps.app.goo.gl/Rwb2zV6iEzX2TV1b9
- 숙소는 2인실 기준 45유로(EUR)였습니다.
오늘은 그렇게 많이 걷지는 않았지만 비가 와서 정비할 것들은 많았습니다. 샤워를 하고 빨아야 할 옷가지들을 빤 후 널고 비옷과 신발도 잘 마르도록 펼쳐 놓았습니다. 저녁시간에도 계속 비가 와서 저희는 숙소에서 라면을 끓여 먹기로 하였습니다. 스페인 현지 슈퍼마켓에서 산 초리조를 반찬 삼아서 먹으니 색다른 별미입니다. 참고로 라면은 그전에 사놓았던 것입니다.
저녁식사를 하고 식기는 깨끗이 씻어놓은 뒤에 밖으로 나가보았습니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숙소 안에만 있기에는 아쉽습니다. 방으로 올라가 비옷을 가지고 다시 내려와 밖으로 나갔습니다. 캄캄한 비 오는 거리를 쪼리만 신고 걸어갑니다. 모두 문을 닫은 듯합니다. 저 멀리 문을 연 것 같아 보이는 카페가 있어서 가보았습니다.
식당을 같이 운영하고 있는 알베르게입니다. 저희는 커피를 한잔 마시기 위해서 들어갔습니다. 내부는 카페를 찾는 손님들을 위한 홀과 알베르게를 이용하는 손님들을 위한 홀이 구분되어 있었고 내부로 이동은 가능한 형태였습니다. 알베르게 이용 손님들이 사용하는 홀에는 사람들도 많아 보였고 시끌벅적했습니다. 트리아카스텔라에서 묵어 가는 순례자분들의 대부분이 이곳으로 오신 것 같습니다.
(*Parrillada Xacobeo Restaurante 카페 위치: https://maps.app.goo.gl/LjCJrFtkgLxhfwit9)
커피를 주문하고 '쎄요(Sello, 도장)'를 하나 찍어와 앉았습니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딱 일주일 남았습니다. 크레덴시알을 길게 펼쳐서 지금까지 걸어온 발자취를 더듬어 봅니다. 시작할 때가 불과 얼마 전인 것 같이 생생한데, 이제 내일이면 사리아(Sarria)입니다.
지나온 날들이 마치 꿈만 같습니다. 믿기지 않습니다. 마음이 싱숭생숭합니다. 저 멀리 시끌벅적한 홀에서 흥이 난 순례자분들의 목소리들이 크게 들려옵니다. 문 밖의 빗소리도 더 거세어지는 듯합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마을 안내판이 보입니다. 내일 사리아로 가는 길목의 위치를 확인합니다. 트리아카스텔라에서 사리아로 가는 길은 두 가지라고 합니다. 마을에서 왼쪽으로 빠지는 길은 사모스(Samos)길이고, 오른쪽으로 빠지는 길은 산실(San Xil)길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모스(Samos)길은 길이가 더 길고 그 대신에 걷기에는 조금 더 수월하며 이 길로 가면 '사모스 수도원'이라고도 불리는 산 훌리안과 산따 바실리사 왕립 수도원(Real Abadia de los San Julian y Santa Basilisa)을 들를 수 있다고 합니다.
산실(San Xil)길은 길이는 사모스길보다 짧지만 다소 가파른 언덕을 언덕을 넘어가야 하는 힘든 길이며 대신에 크레덴시알에 그림을 그려주는 소위 '그림 쎄요'를 제공해 주는 아트 갤러리(Art's Gallery)가 있는 길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 산티아고 순례자 협회의 설명에 따르면, 사모스길과 산실길 둘 다 프랑스길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간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저희는 산실길을 걷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옵니다. 캄캄한 밤의 숙소는 조명을 받아서 분위기가 있어 보였습니다. 2층과 3층의 불 꺼진 객실과 도미토리의 창문을 보니, 확실히 비수기가 된 것 같습니다.
내일은 사리아로 갑니다. 내일부터 '점프'는 없습니다.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걸어서 갑니다.
그럼 다음편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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