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후기 32-2] 피스테라의 미슐랭 가이드 및 스페인 랩솔 가이드 선정 식당, 테라(Terra)
피스테라에는 미슐랭 가이드와 (스페인에서는 미슐랭보다 더 권위를 인정해준다고 하는) 랩솔 가이드에 선정된 코스 요리 미식당이 있습니다. 바로 테라(Terra, '땅'이라는 뜻의 갈리시아어)라고 하는 식당입니다.
순례길을 마치고, 그간의 시간에 대한 개인적인 보상으로, 천천히 여러 가지 종류의 미식과 근사한 와인을 즐기며, 걸어온 길을 회상하시길 원하는 분들은 꼭 한번 들러보시길 추천합니다.

랩솔 가이드란?
렙솔(Repsol)은 스페인 최대의 정유회사로 세계 10대 석유회사이자 포춘 글로벌 500중에서 15위의 기업입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잘 모르실 수도 있으나 그 로고를 보면 한번 쯤은 본 기억들이 있으실 겁니다. 특히 오토바이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요.

랩솔(또는 렙솔) 가이드(Guía Repsol)는 렙솔에서 발간하는 식당과 여행에 대한 가이드입니다. 프랑스 타이어 회사인 미쉐린(프랑스어로 미슐랭)에서 매년 발간하는 식당과 여행에 대한 가이드처럼, 렙솔 가이드는 스페인의 정유회사에서 발간하는 가이드인 것입니다.
그래서, 스페인 국내에서는 미슐랭 가이드보다 렙솔 가이드가 더 권위있는 것이라고 하네요.
코스요리 메뉴 소개
식당의 메뉴는 간단합니다. 셰프가 엄선한 12가지의 코스요리 딱 한가지 뿐입니다. 메뉴판 맨 위에 보면 Otoño(가을) 이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코스 요리의 내용은 시즌마다 차이가 있는 듯 합니다.
먼저 12가지의 코스 요리에 대한 설명이 있는 A4용지로 된 메뉴를 줍니다만, 스페인어로 되어 있어서 스페인어를 모른다면 메뉴에 대한 이해를 하기에는 어려웠습니다. 파파고 번역기를 통해 영어로, 한국어로 번역해 보았지만, 제대로 번역이 되지 않았습니다.

새하얀 피부에 머리칼부터 속눈썹까지 금발인 젊은 청년 직원이 음료에 대해 물어봅니다. 그러면 무슨 종류의 음료가 있는지 되물어 보지만, 와인의 종류에 대해서 아는게 없어서 돌아오는 답변을 이해하진 못합니다^^.
그냥, 이 코스 요리와 가장 잘 어울리는 화이트 와인으로 추천을 해 달라고 요청을 하였습니다. 냉장 보관되어 있던 와인이 한병 나오고 와인을 넣어둘수 있는 아이스 버킷을 가져다 줍니다. 와인이 맛이 괜찮았습니다. 서빙되어 나오는 각종 코스 요리와도 잘 어울렸고, 매 코스별 시식이 끝난 후 입맛을 리셋해주는 듯한 깔끔한 맛이었습니다.

No. 0 - 빵과 올리브 오일
메인 코스 요리가 시작되기 전에 먼저 빵과 올리브 오일이 나옵니다.
메뉴에 있는 설명에 의하면, 장인 제빵사(Maestro Panadero) 후안 루이스 에스떼베스(Juan Luis Estévez)의 고수분 빵과 신성한 리베이라의 올리브 오일이라고 합니다.
표면이 구워져 나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아주 촉촉한 빵입니다. 일반 식당에서 나오는 빵과는 다르다는 것이 느껴지는 식감과 빵의 풍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같이 나온 올리브 오일과 굉장히 잘 어울렸습니다.

No. 1 - 버섯 스프
가을 시즌이 제철인 버섯으로 만든 스프라고 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양송이 스프라고 보시면 안 됩니다. 양송이는 익히지 않은 싱싱한 상태여서 식감은 물컹하거나 쫄깃하기 보다는 아삭하였고, 스프의 온도는 너무 뜨겁지 않고 미지근한 온도라 먹기에 좋았으며, 맛은 약간은 싱겁지만 그렇게 싱겁지만은 않은 멸치육수의 풍미가 살짝 느껴지는 담백한 맛이었습니다.

No.2 - 타르트(파이)
흰 브로콜리로 알려진 콜리플라워가 얹혀진 타르트입니다. 바삭한 타르트 위에 콜리플라워와 크림 등으로 맛을 내었는데요, 달큰짭짤한 맛이 났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No. 3 - 호밀빵 핀초스
직화로 구운 호밀빵 위에 크림과 특제소스(버섯을 갈아 넣은 것으로 추정)가 올라가 있었습니다. 바삭한 빵의 식감과 크림의 부드러움 위에 특제소스가 잘 어우러지는 맛이었습니다.

No. 4 - 홍합
다음으로는 특제소스를 뜸뿍 부은 살이 잘 오른 익힌 홍합이 나왔습니다. 단순히 고추 기름으로 보이던 붉은 소스에서는 중국식 향신료를 가미한 풍미가 느껴지는 맛이 났습니다. 이 식당의 셰프는 한국을 포함한 동양의 다양한 맛에 대해 공부하고 있고 또 개발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동서양의 조화가 어우러지는 맛이었습니다.

No. 5 - 송아지고기 육회를 얹은 빵
마리네이트(양념)가 된 송아지 고기 육회가 양파 절임과 함께 직화로 구운 바게트 위에 얹어져 나왔습니다. 굉장히 색다른 맛이었습니다. 고기와 빵 그리고 아삭한 양파의 식감이 잘 어울렸습니다.

No. 6 - 훈제 가다랭이
신선한 가다랭이(Albacora)를 훈연하여 특제 소스와 함께 나온 요리인데, 훈연된 향이 강하지 않고 연하고 부드럽게 났으며 노란색 소스와 잘 어울렸습니다. 소스는 겨자 소스가 아닌 특제 소스였는데 맛이 색깔처럼 강하진 않고 부드러웠습니다. 특히 화이트 와인과 잘 어울렸습니다.

No. 7 - 오징어 먹물 버섯
보통 이런 코스 요리를 먹을 때는 처음에 요리가 나오면 눈으로 먼저 먹는다고 하지요? 찬찬히 훑어보면서 그 맛을 상상하는 것이지요.

이 오징어 요리는 이 날의 요리 중 예상을 가장 크게 초월한 요리였습니다. 비주얼을 보고는 크게 기대하진 않았는데요, 한 입 먹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이었습니다. 살짝 데친 오징어의 식감과 Oil base의 짭짤한 오징어 먹물 소스가 기가막힌 조화를 이루었으며, 거기에 더해진 싱싱한 버섯은 금상첨화였습니다.

No. 8 - 구운 셀러리아크와 거품 소스
메뉴에 적혀있는 Apio nabo는 영어로 Celeriac(셀러리악)이라고 합니다.
셀러리악은 셀러리의 한 종류로 한국에서는 '뿌리 셀러리' 또는 '셀러리아크'라고 부르기도 한다네요.
먹기 좋은 크기의 피자 조각처럼 자른 셀러리아크를 그릴에 구운 뒤 거품이 몽글몽글하게 올라온 소스를 부어놓은 요리가 나왔습니다. 분자(分子)요리 기법 중의 하나인 거품추출법으로 만든 듯한 거품소스는 이상하게 구운 셀러리아크와 잘 어울렸습니다.

No. 9 - 구운 생선구이와 된장 소스
그 다음은 구운 생선요리가 나왔는데 이 요리에 들어간 특제 소스는 한국의 된장(Korean soybean paste)을 베이스로 하여 개발한 소스라고 셰프가 직접 와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실제로 한국에서 사온 된장이 담긴 플라스틱 단지와 한국의 요리 관련 두터운 서적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보여주었습니다.
스페인어로 된 Salmonete를 번역해 보니 노랑촉수(Striped Red Mullet)라는 생선이라고 나옵니다. 쫄깃하고 담백한 생선살이 특제소스와 잘 어우러졌습니다. 요리는 진화하는게 분명합니다.

No. 10 - 새끼 돼지 구이
다음으로는 새끼 돼지 구이요리가 나왔는데, 겉은 바삭하면서도 속살은 수육처럼 부드러웠습니다. 아주 연하게 간이 된 간장 베이스의 소스에 고추장과 매우 흡사한 특제 소스가 곁들여져 나왔습니다. 고기위에는 올리브 조각이 뿌려져 있었습니다.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조합은 이상하리 만치 잘 어울렸습니다. 마지막에 마시는 한 모금의 화이트 와인은 화룡정점입니다.

No. 11 - 달달한 으깬 호박과 샤베트
마지막 두 가지 코스는 디저트처럼 달콤한 맛의 요리가 나왔습니다. 먼저 부드러운 크림에 달달한 으깬 호박을 넣고 그 위에 상큼한 샤베트와 구운 고구마 스틱이 함께 나왔습니다. 맛있습니다. 식후엔 역시 달달한 맛이 제일입니다.

No. 12 - 밤쨈(마롱 글라세)을 곁들인 아이스크림과 쿠키
마지막으로는 달콤한 밤쨈을 곁들이 아이스크림과 쿠키가 함께 나왔습니다. 앞전의 다양한 코스 요리의 품격있는 맛으로 들떠 있던 미각은 이 밤쨈 베이스의 아이스크림 디저트가 선사하는 달콤함으로 절정을 맛봅니다. 그리고 미식의 향연에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미각을 화이트 와인이 깔끔하게 깨워줍니다.

식당의 위치와 가격
식당의 위치
식당은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에서 타고온 Monbus가 내리는 지점(피스테라의 Bus stop)에서 도보로 약 6분 거리에 있어서 접근성이 매우 좋습니다. 정확한 위치는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 Restaurante Terra 위치: https://maps.app.goo.gl/qFVCY2J5XDGpetia6
식당의 가격
메뉴판 맨 아래에 보면 가격이 나와 있는데 이 식당의 코스요리는 인당 50유로입니다.

와인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종류별로 가격이 다르나 대략 30유로 전후가 되는 듯 합니다. 저희가 선택한 와인은 29유로였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두사람 식사비용 100유로에 와인 한병까지 포함하여 총 129유로가 나왔습니다.
인당 식사비용이 한화로 약 7만원이 상회하는 만만치 않은 가격인 것은 분명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한번 시도해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린대로 순례길을 마치고, 그간의 시간에 대한 개인적인 보상으로, 천천히 여러 가지 종류의 미식과 근사한 와인을 즐기며, 걸어온 길을 회상하시길 원하신다면 한번 들러보시길 추천합니다.
음식에 대한 후기
사실 겉으로 보이는 식당은 그렇게 화려하거나 번듯해 보이진 않습니다. 위 사진에서 보셨겠지만 입구도 평범하고, 실내 인테리어도 평범하며, 내부 공간도 바(Bar) 제외하면 약 4개 정도의 테이블이 있었으니 좁은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이 곳에서의 식사는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특히 코스별로 나오는 모든 요리들이 상상과 예상을 벗어나는 맛과 풍미를 제공했기 때문에 매 코스요리가 나올때마다 무슨 요리가 나올지, 어떤 맛일지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며 식사를 했었습니다.
더군다나 그 길고 긴 순례의 여정을 다 마친 후 갖게 된 미식이라 그런지 이 곳에서의 그 즐거움은 더 컸던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아시아 지역의 여러 나라를 다녀보면서 각 지역의 특색있는 음식들을 먹어보았습니다. 여행으로 갔던 곳들도 있고 직장에서의 일 때문에 갔던 곳들도 있었는데, 그 영향인지 새로운 음식을 발견하고 맛보는 것이 저에겐 큰 기쁨과 재미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글을 쓰면서 문득, 순례길에서 만나 '패밀리'가 된 '안티모' 동생도 이 부분에서는 저와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안티모'도 이 곳에 같이 왔다면 분명히 엄청 좋아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